[나무와 경영] 구상나무와 위대한 비전-上

김종운(한국능률협회컨설팅) 승인 2022.08.02 16:33 | 최종 수정 2022.08.02 16:34 의견 0

▲겨울에 더 빛나는 도도한 나무
구상나무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데다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 고산지대에서만 살고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조금 연배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달력을 많이 사용하던 시절 겨울 사진에 등장하는 멋진 나무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거기에 항상 자리 잡고 있던 나무가 구상나무다. 설경이 멋진 사진 속에서 하얀 수피에 고목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면 구상나무가 틀림없다. 고산지대에 살다 보니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나뭇가지가 한쪽으로 뻗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어느 해인가 회사에서 12월 말에 제주도로 워크숍을 갔었다. 당시 눈이 쌓인 한라산을 올랐는데 흰 눈에 어우러진 구상나무 군락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정신이 혼미해져 걸음을 멈추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구상나무는 어딘가 모를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나무이다. 생태학적으로 구상나무는 추위 속에서 잘 사는 나무인데, 빙하기가 지나고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설 자리가 점점 더 없어져 이렇게 높은 산의 정상 부근까지 밀려 올라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갈수록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으니 구상나무의 모습을 조만간 자연 속에서는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구상나무의 고귀한 자태는 겨울에 더욱 빛나기는 하지만 여름과 가을의 구상나무도 그 멋스러움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푸른 잎은 소나무의 정기에 못지않고, 특히 럭비공을 닮은 열매는 하늘로 꼿꼿이 서서 한껏 자존심을 세운 모습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올망졸망 달린 구상나무 열매는 참으로 탐스럽고 예쁘기까지 하다.

아직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구상나무 열매는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진다고 한다. 살아 있는 동안 멋진 모습으로 그 삶을 다하고 떨어질 때 장렬히 전사하는 고고한 장수 같은 모습이라고들 말한다. 사람들이 갖다 붙인 표현이지만 꽤 멋스러운 맛이 있다고 생각한다.

겨울의 나무인 구상나무는 수형이 아름다워 크리스마스트리로 제격이다. 20세기 초 영국인 윌슨이 동아시아를 탐사하며 제주도의 구상나무 종자를 가져가서 학계에 보고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후 정원용 상록수로 개량하였는데 크리스마스트리로 매우 사랑받는 나무로 꼽힌다는 설이 있는데, 식물을 전공하는 교수에게 확인해 보니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젓나무와 수형이 비슷해 서로 착각을 일으킨 사람들로부터 와전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빌 게이츠·손정의의 위대한 비전

다시 말하지만 구상나무는 지구상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나무이다. 해외에서 개량을 해서 자라고 있긴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얘기다. 다른 어떤 나무보다 가장 한국적인 나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구상나무의 오래된 고목은 한국인의 ‘한’을 담은 모습이고, 떨어질 때 산산이 흩어지는 열매는 한국인의 ‘정열’을 보여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독자들께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라산이나 지리산 정상에서 구상나무 군락을 한 번 보시기를 권해 드린다. 어딘지 모를 신비로움 속에서 마치 삶에 대한 교훈을 얻을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정숙하게 해주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 나를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그래서 요즘 같은 물질이 중시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균형감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다.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영을 하는데 있어서도 이런 나침반이 필요할 때가 있다. 위대한 기업가들을 보면 경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 보통 이것을 비전이라고 표현한다.

훌륭한 경영자들은 하루하루에 매몰되지 않는 경영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 회장은 '전 세계 사람들의 책상에 컴퓨터가 놓이게 하겠다'는 비전을 가졌다고 한다. 그 꿈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인 윈도우즈를 개발하면서 현실화되었다.

일본 최고의 기업가로 올라선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디지털 정보 혁명으로 인간을 행복하게!'라는 창립 이념을 가지고 있다. 2011년 ‘포브스’ 선정 일본 1위의 자산가였고, 2012년 4월 현재로 140만 명의 트위터 팔로우어를 가진 CEO지만 처음 아르바이트 2명을 데리고 창업을 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꿈만큼은 정말 창대했던 것 같다.

손정의 회장의 비서 출신인 미키 다케노부가 쓴 '일 잘하는 사람의 시간 관리법 10초 15분 1주일'이라는 책에서 손정의 회장이 고등학생인 만 18세에 세운 인생계획을 소개하고 있는데 '20대에는 나의 존재를 알리고, 30대에는 사업 자금을 모으며, 40대에 승부를 건다. 그리고 50대에 사업을 완성하고 후계자를 양성한 다음 60대에 은퇴한다'고 나와 있다.

빌게이츠 회장이나 손정의 회장이 세운 비전이 위대한 것은 그 비전의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전속에 담고 있는 이타적인 생각 역시 그들의 비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2011년 손정의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취업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젊은이에게 한 마디 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 자신이 아닌 ,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큰 뜻을 세워라" "그 꿈에 투자할 때 놀라운 성취를 이룰 수 있다"

과연 성공을 이룬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일까? 아니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에 성공을 한 것일까? 나는 감히 후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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