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경영] 플라타너스 vs 버즘나무…브랜드가 필요하다-上

김종운(한국능률협회컨설팅) 승인 2022.05.17 11:33 | 최종 수정 2022.05.25 09:12 의견 0

시인의 나무

플라타너스라는 나무 이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로수로 가장 인기 좋은 나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플라타너스는 공해에 강하고 자람이 빠르며 풍성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로수로 매우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한자로 천근성이라고 표현하는데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않는 나무인지라 가지를 잘 쳐주지 않으면 여름철 태풍에 쉽게 쓰러질 위험이 큰 나무이기는 하다.

필자의 기억 속에 멋진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 중 한 곳은 태릉에서 육군사관학교를 끼고 별내로 넘어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늦은 봄부터 여름까지 녹음이 우거진 시기에 그 가로수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면서 지나갈 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 오는 시원함은 말로 형언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물론 쭉쭉 하늘로 뻗어 오른 나무 하나하나의 웅장함 자체만으로도 장관을 이루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기도 하다. 누구의 발상으로 그 거리에 플라타너스를 가로수로 심었을까? 길 양쪽으로 도열한 플라타너스를 보노라면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절제되고 정돈된 도열을 보는 느낌마저 들어 참 잘 어울리는 위치에 심겨졌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또 한 곳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양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플라타너스를 꼽고 싶다. 까탈루냐광장에서 콜럼버스기념비까지 이어지는 람블라스 거리를 양쪽에서 아치처럼 감싸고 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는 장관이었다.

앞서 말한 태릉의 플라타너스가 전지가 되어 각진 모습의 군인 같았다면 람블라스 거리의 플라타너스는 자연 그대로의 가지를 드리운 아름다운 처녀의 머릿결 같은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머릿결 같은 가지 사이로 드리우는 눈부신 햇살은 마치 살결을 어루만져 주는 듯 부드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플라타너스 하면 왠지 모를 멋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마도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본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라는 시로 인해 가지게 된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 플라타너스 /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로 시작되던 그 시는 매우 멋스러운 시로 유명하다. 연애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사랑받는 시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플라타너스 하면 꽤나 고상한 나무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이름으로 말한다
플라타너스를 우리말로는 버즘나무라고 부른다. 나무껍질이 군데군데 벗겨진 것처럼 보여 옛날에 많이 유행하던 피부병의 일종인 버짐처럼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의 모양새를 매우 잘 표현한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 종류는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단풍버즘나무 등이다. 종류를 모두 기억할 필요는 없겠으나 거리에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열매의 개수를 확인하는 것이다. 플라타너스 열매는 동글동글한 탁구공처럼 생겼고, 표면에 솜털이 있어 길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면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우선 버즘나무는 열매가 2~6개씩 무리 지어 달리고, 양버즘나무는 열매가 하나씩만 달린다.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의 잡종인 단풍버즘나무는 열매가 2개씩 달린다. 앞으로 플라타너스의 열매를 보면 조금은 더 친숙해 지리라.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플라타너스라는 이름에서 받은 뭔가 이지적이고 고상한 이미지가 버즘나무가 되는 순간 지저분하거나 변변치 못한 이미지로 완전히 변해 버린다는 것이다. 같은 나무를 두고 이름 하나로 인해 이렇게 다른 느낌을 받게 되니 이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각 대학의 학과 이름을 바꾸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었다. 내가 다닌 학과 이름도 임학과에서 산림자원학과로 바뀌었다. 축산학과는 동물자원학과, 잠사학과는 천연섬유학과 등으로 개명을 했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이름을 바꾼 이후 학과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고 입시생들에게 선호도가 더 높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위 학과 커트라인이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대학이나 학과 입장에서는 더 우수한 학생들을 받을 수 있으니 호적 변경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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