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2020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울프 콜(The Wolf’s Call)은 잠수함 액션영화이다.
러시아 잠수함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자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프랑스가 자국의 전략원자력잠수함(SSBN)인 무적함에게 보복 핵공격을 명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영화에 등장하는 SSBN은 핵탄두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원자력추진 잠수함으로,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최강대국 6개국만이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는 선제 핵무기 공격인 제1격(First Strike) 보다는 자국이 핵공격을 받았을 때 전략원잠에 탑재된 핵미사일로, 보복응징하는 제2격((Second Strike)를 핵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핵전략에 필수적인 무기체계는 프랑스의 전략원잠과 전략원잠에서 발사되는 핵탄두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다.
제1격으로 지상의 보복응징 무기가 전멸해도 바다 속에 있는 잠수함은 안전하기 때문에 제2격이 가능하다. 제2격을 위해 프랑스는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4척의 전략원잠(Le Triomphant Class) 중 한 척은 반드시 대서양에서 작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법으로 정하고 있다.
제2격 능력은 제1격을 억제하는 강력한 핵억지력으로 작용한다. 공격하는측이 제1격에 성공해도 선제 공격한 측도 보복 핵 공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산안창호함과 SLBM…韓 해군도 2격 능력 탑재
우리 해군도 최근 2격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프랑스와 달리 핵탄두가 없어 제한적이긴 하지만,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SLBM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3000톤급 중형잠수함 도산 안창호함(KSS-III)과 현무 4-4 SLBM이다.
올해 8월 해군에 인도된 도산 안창호함은 3주 이상의 잠항능력과 SLBM을 탑재한 대한민국의 핵심 비대칭 전략무기이다. 도산 안창호함에 이어 같은급 2척(안무함, 신채호함)이 추가 건조 중이며, 후속 3척(Batch-II)의 건조도 추진중이다.
도산 안창호함은 전세계 3000톤급 중형 잠수함 중 최고의 펀치력을 갖춘 잠수함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형 디젤잠수함이지만, 수평발사관에서 발사되는 중어뢰, 대함/대지 순항미사일 뿐만 아니라, 발사관이 6개인 수직발사관까지 갖춰 SLBM의 발사도 가능하다.
SLBM의 자력 발사 성공은 세계에서 7번째이다. 2차 대전 승전국으로 이뤄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과 인도만 이 기술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SLBM을 바지선을 이용한 수중 발사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잠수함 발사는 성공하지 못했다.
현무 4-4로 명명된 국산 SLBM은 사거리 500Km인 현무 2B(탄투중량 1톤)를 기반으로 개발됐으며, 전술핵무기급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 돌입 시 속도인 마하 10 이상의 운동에너지를 고려하면, 5~6발의 현무 2B의 파괴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 수준인 15Kt에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9월 도산 안창호함에서 수중사출 시험에 성공했다.
또한 도산 안창호함은 최첨단 소음저감 기술과 공기불용추진시스템(AIP, Air Independent Propulsion)인 국산연료전지 탑재로 은밀성이 극대화 돼 탐지되지 않고 적진 깊숙이 침투가 가능하다. 유사시 도산 안창호함의 SLBM으로 적국의 주요 전략목표를 근거리에서 타격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발사된 SLBM은 탐지가 되더라도 대응 가능시간이 짧아 적군이 방어하기 어렵다. 핵탄두가 탑재되면 전형적인 제2격 능력인 것이다.
80년대 첫 잠수함 개발…핵추진함도 꿈꾼다
북한은 세계적인 잠수함 대국이다. 북한이 보유중인 잠수함은 제인연감(HIS Jane’s Fighting Ship) 기준, 50여척에 달하며, 이런 북한의 잠수함 전력은 1980년에 완성됐다.
196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1800톤급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을 도입했고, 1970년대에는 중국으로 1500톤급 로미오급 7척을 도입했다. 특히, 북한은 로미오급의 설계도 및 건조기술을 이전 받아 1995년까지 14개월마다 한 척씩 자국 영토에서 잠수함을 건조했다. 물론 현재 북한이 보유중인 잠수함은 낙후돼 군사전략적 의미가 반감됐지만, 1980년대 잠수함이 한 척도 없던 우리에게 북한의 잠수함 전력은 엄청난 위협이었다.
대한민국은 1980년대 들어서야 잠수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국방과학연구소가 설계하고, 코리아타코마에서 건조한 178톤급 잠수정인 돌고래급 1번함이 1985년에 취역했고, 성능을 개선한 2번, 3번함은 90년, 91년에 각각 취역했다.
북한의 1800톤급 위스키급 잠수함에 규모나, 성능 면에서 비교될 수 없지만, 잠수함을 설계, 운용할 수 있는 자체 인력과 기술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들 잠수함은 모두 퇴역했으며, 3번 ‘돌고래’는 서울 한강의 서울함공원에 전시돼 있다.
원양작전이 가능한 본격적인 잠수함 도입은 1980년대 후반이다. 우리 해군은 세계적인 Best Seller 잠수함인 1400톤급 209급 도입을 결정하고, 1987년 3척을 독일 HDW사에 주문했다.(1989년 3척, 1994년 3척 추가 주문)
선도함(1번함)인 장보고함은 독일에서 건조됐지만, 2번함부터 9번함은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됐다. 대우조선해양이 1번함 건조 시 서울대 조선공학과 출신을 주축으로 한 최고의 인재를 HDW에 파견해 기술이전을 받은 덕분이다.
HDW에서 옥포로 돌아온 이들은 2번함부터 9번함까지 건조를 주도하며 대한 해군의 잠수함 역사를 새로 썼다. 또한 이들 상당수는 대우조선해양과 국내 주요조선소에서 중역 자리 올라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지금도 하와이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환태평양 해군합동훈련(RIMPAC)에서 그 우수성과 우리 해군의 운용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공기불요추진시스템(AIP)을 탑재해 잠함능력이 대폭 향상된 1800톤급 214급 잠수함 9척(손원일급)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각각 6척, 3척을 건조해 2019년까지 모두 전력화했다.
손원일급은 AIP를 사용해 수중에서 4노트로 2주간 잠함이 가능하다. 수중에서 2~3일간만 잠항할 수 있는 장보고급에 비해, 손원일급은 잠수함의 최대 무기인 은밀성을 높여 군사 전략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적진에 조용히 침투해 먼저 듣고, 먼저 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해군은 209급 9척, 214급 9척을 건조한 경험을 바탕으로 3000톤급 중형잠수함 설계를 2007년에 착수해 장장 14년만인 올해(2021년) 도산 안창호함을 전력화했다. 독자기술로 개발된 3000톤급 중형 잠수함의 선도함인 도산 안창호함을 우리 손으로 설계, 건조, 전력화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특히, 우리 해군은 도산안창호함에 탑재되는 전투체계, 소나시스템, AIP 시스템, 수평발사시스템, 수직발사시스템 등을 자체 개발해 국산화율을 76%로 끌어올렸다. 장보고급이나 손원일급은 독일에서 자재를 전부 수입했다.
현재 장보고-III Batch-I 추가 2척(안무함, 신채호함)이 진수를 마치고 시운전을 진행중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가 들어가는 장보고-III Batch-II는 3척 중 1, 2번함은 대우조선해양에 발주됐고, 3번함은 내년(2022년)에 발주될 예정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장보고-III는 납축전지를 장착한 도산안창호급에 비해 잠함능력이 대폭 향상된다.
장보고-III Batch-III는 4000톤급 이상으로 계획되고 있으며, 한국해군은 핵추진 방식의 도입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해군이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되면 속도가 빠르고 잠항능력이 긴 핵추진 잠수함 1~2척이 호위전력으로 필요하다. 디젤잠수함은 항공모함 전단이 전속(25~30knots)으로 항진할 경우 전단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이 때문에 항공모함 호위를 위해서는 최고속도로 무제한 잠항이 가능한 핵추진잠수함(SSN)이 필수적이다. 디젤 잠수함은 통상 최고속도로 잠항할 경우 1~2시간 후 재충전을 위해 부상해야 하지만, 핵추진잠수함은 30knots 이상의 속력으로 무제한 잠항이 가능하다.
‘One Shot, One Hit, One Sink’ 세계최고 찬사
선진 해군에 비해, 잠수함 도입이 늦었지만 우리 해군은 세계최고의 잠수함 운용능력을 자랑한다. 장보고급 잠수함들은 서태양평 연합훈련, 환태평양 해군합동훈련(RIMPAC)에서 탁월한 성능을 선보였다.
이천함은 1999년 서태평양훈련에서 단 1발의 어뢰로 1만 2000톤급 미해군 퇴역 순향함 오클라호마시티를 격침시켜 연합훈련 사령관으로부터 ‘One Shot, One Hit, One Sink’ 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 후 ‘One Shot, One Hit, One Sink’는 우리 잠수함사령부의 구호가 됐다.
2004년 림팩에 참여한 장보고함은 연합훈련 중 위치가 발각되지 않고, 가상적국의 함정 30여척을 가상 침몰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이 30여척에는 미 해군의 10만톤급 핵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함(John C Stennis, CVN74)도 포함된다.
림팩에 참가할 때마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가상 적군을 전멸시키는 민폐를 끼쳐, 2010년 이후 림팩에선 우리 잠수함에게 공격 임무를 맡기지 않고, 수색 및 정찰 임무만 부여하고 있다.
비대칭전략무기인 잠수함 전력 강화해야
한반도는 세계 4대 강국(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 쌓여 있다. 인구규모, 경제규모 고려 시, 주변 강국만큼 군사력을 증가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 우리가 이길 수는 없다면, 우리를 공격한 적국도 제2격이라는 대한민국의 독침을 맞아 빈사(瀕死) 상태가 되게 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져야 한다. 군사력 증강 시, 가성비를 따져야 하는 이유이다.
수중 300~400m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잠수함은 은밀성이 높아 탐지가 극도로 어려워 이런 독침 전략에 제격이다. 유사시, 발견되지 않고 적국의 해안에 접근하여 전술 핵무기급 SLBM으로 적국의 수도를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다.
잠수함은 가성비 좋은 비대칭전략무기이다.
잠수함이 작전하는 해역에서는 어떤 수상함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다. 어뢰에 명중되면 어떤 대형 함정이라도 두 동강이 나서 수장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지만, 북한의 어뢰를 맞아 두동강이 나 침몰한 천안함이 좋은 예이다.
항공모함 도입에 대한 찬반이 뜨거운데, 사실 우리 한반도 주변 해역과 동북아 바다에서는 항공모함보다는 잠수함이 제격이다.
최근 미국은 영국, 호주와 안보동맹체인 AUKUS를 결성하고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하기로 하였다. 미국이 1950년대에 영국에게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한 후, 처음으로 해외에 잠수함 기술을 이전한 것이다.
동북아 정세변화로 우리에게도 핵잠수함 도입의 가능성이 보인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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