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은 항공기를 바다에서 전투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해상플랫폼이다. 50~100기의 전투기를 싣고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해 바다와 육지의 적을 초토화시키는 괴물로, '바다의 제왕'으로 불린다.
항공기를 탑재한 함정을 항공모함으로 정의하면, 1차 세계대전 시기의 초기 항공모함은 비행갑판이 없는 구축함 형태였다. 당시에는 거함거포주의(대형 전함에 구경이 큰 중·대구경포로 무장하는 군사전략)에 입각해 건조된 전함이 해상의 최강자로, 적의 함대나 함선을 먼저 포착해 대구경 장사정포 등으로 먼저 타격하는 것이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 주요전략이었다. 바다에서는 적의 위치를 찾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때 항공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행거리가 늘어나고 속도가 빨라진 항공기가 해상 정찰 및 적함 탐지 업무에 최적이었던 셈이다. 당시 항공기에는 레이다를 설치할 수 없어 적함 탐지는 육안에 의존했다. 전함에 탑재된 전투기는 사출기(새총같이 항공기를 쏘아, 항공기를 급가속 시켜주는 장비)로 이륙시키고, 해상에 착륙하면 크레인으로 함상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을 썼다.
태평양전쟁 달군 미·일 항공모함
현재와 같은 항공모함은 항공기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1차 세계대전 이후 출현했다. 항공기를 공격용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와 같은 모양으로 설계해 진수된 최초의 항공모함은 영국의 HMS 허미즈호(95)다. 다만, HMS 허미즈는 1919년 진수됐지만, 설계상 결함으로 몇차례 수정을 거쳐 1924년에야 실전배치됐다.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으로 설계·건조돼 실전 배치된 항공모함은 일본의 호쇼함(1922년)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항공모함은 해전의 전면에 등장한다. 일본 제국 해군은 1941년 12월 7일 총 450대의 항공기를 실은 6척의 항공모함으로 진주만을 공습해 미국 전함 5척을 격침시키고, 200여대의 항공기를 파괴했다. 태평양 전쟁 초기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항공모함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미국의 반격을 주도한 것도 항공모함이다. 미국 해군은 1942년 6월 미드웨이에서 항공모함 3척을 동원해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4척을 수장시키는 전과를 올리며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항공모함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막대한 항모전단 건설 비용과 운영유지비로 인해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경제강국만의 전유물이었다. 최근에는 G2인 중국이 새로운 항공모함 강국으로 떠올랐으며, 일본도 항공모함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총 11척의 10만t급의 슈퍼캐리어를 운영하고 있고, 영국은 최근 6만5천t급 항모 2척을 전력화했다. 중국은 2척을 운용중이고, 4척을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다. 일본은 최근 이즈모급 헬기항모를 개조중이다. 개조가 완료되면 F-35B 전투기를 탑재할 수 있게 된다.
10조 짜리 표적될라..'국산 항공모함' 논란 가열
우리 해군도 항공모함(CVX)를 준비하고 있다. 2020년 개념설계를 완료한 데 이어 2022년 기본설계 입찰을 발주할 예정이다. 함정 건조사업은 건조가능성검토-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건조-양산함 건조 순으로 이뤄진다.
한국 해군의 항공모함 도입이 가시화하면서 필요성에 대한 논쟁도 가열되고 있다. 국회와 군, 유투버, 군사매니아 등 여기저기서 찬반논쟁이 뜨겁다.
항공모함 논쟁의 이슈 중 하나는 도입 비용이다. 우리나라가 항공모함을 보유하려면 항공모함 건조에 2조원, 함재기 구입에 3조원 등 순수 항모 도입에 약 5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구축함(3~4척), 잠수함(1~2척), 군수지원함(1척) 등 호위함을 포함해 항공모함 전단을 구성하려면 어림잡아 10조원 이상이 들어간다.(해군 경항모 전단 개념도 참고)항공모함은 자체 방어 능력이 부족해 호위세력과 전단을 이뤄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동북아 바다의 군사전략적 환경에서 거액을 들여 도입한 항공모함이 값 비싼 표적함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논란이다. 우리 항공모함이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의 굶주린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의 목표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우리나라의 주변국은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개발, 실전에 배치중이다.
초음속 미사일의 원조인 러시아는 1980년대 이미 최고 속도 마하 3, 해수면 10~20m의 비행고도(Sea Skiming)로 은밀히 접근하는 모스킷(P-270 Moskit)을 실전 배치했다. 모스킷은 목표물에 근접하는 종말단계에서 비행고도를 해수면에서 7m 수준으로 낮출 수 있고, S자 회피기동도 가능해 탐지 및 격파가 어렵다.
러시아의 그리고로비치 호위함 등에 탑재된 클럽(3M-54 Klub) 미사일은 수평선 너무에서 목표물에 접근할 때에는 마하 0.8의 속도로 순항하다 목표물 근처에서 속도를 마하 2.9로 높여 더욱 위협적이다. 고각도(High Angle) 회피기동 기능까지 갖췄다.
러시아는 최근 마하 9, 최대 사거리 1000km에 달하는 지르콘 순항미사일의 2차 발사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호위함에서 발사된 지르콘은 350km 떨어진 북극해 바렌츠해 연안의 표적을 명중시켰다.
중국의 구축함인 난창함(Type 055 구축함의 1번함)에는 러시아의 클럽(3M-54 Klub) 대함미사일과 유사한 YJ-18 초음속 대함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난창함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구축함으로, 2020년 1월에 전력화됐다.
난창함의 주력무기인 YJ-18은 마하 0.8로 순항하다 목표물 접근 시 속도를 높여 목표물 40km 전방에서는 마하 3의 속도로 목표물에 돌진한다. 이 미사일은 중국의 주력 구축함인 Type 052D와 Type 055에 탑재돼 있다.
일본은 2017년 최고속도 마하 3, 사거리 200km의 공대함 ASM-3 초음속 미사일의 개발을 완료한 데 이어 ASM-3의 사거리를 400km로 연장하는 성능개량을 진행하고 있다. ASM-3의 개발을 진행할 때에만 해도 사거리 200km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지만, 동북아 주변국의 함대공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발사플랫폼인 F-2 전투기가 먼저 격추될 수 있어 ASM-3의 사거리 연장이 필요해졌다. 대만은 증대되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항공모함 킬러라는 별칭을 가진 마하 2 이상으로 비행하는 슝펑-3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독자개발해 실전 배치를 완료했다. 항공모함에 극도로 위협적인 초음속 대함미사일이 동북아 바다에 지뢰처럼 깔리고 있는 셈이다.
초음속 대함미사일 탐지서 반격까지 '10초 전쟁'
초음속 대함미사일은 발사된 후 포물선 운동을 하는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비행기처럼 진로와 고도를 변경하는 순항미사일이다. 초음속 대함 미사일은 발사된 후 목표 함정에 발견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수면에 바짝 붙어서 날아 가는 Sea Skimming 기동을 통해 목표 함정에 접근한다. 미사일의 목표가 된 함정은 언제쯤 미사일 공격이 임박한 것을 알 수 있을까? 함정에 장착된 대공레이더는 물리적 한계로 수평선 너머 시선보다 아래에서 기동 중인 미사일은 발견할 수 없다. 수평선을 넘어간 배가 보이지 않는 원리와 동일하다. 목표 함정의 대공레이다가 수면 위 20m에 설치돼 있고, 미사일의 Sea Skimming 고도가 20m라면, 함정으로부터 약 32km 지점에서 함정의 대공레이다는 미사일의 접근을 최초 탐지할 수 있다. 이후 지르콘과 같이 마하 9로 비행하는 미사일의 함정까지 도달시간은 딱 10초다. 마하 9로 날아오는 미사일은 초당 3.06km를 이동한다. 공격당하는 함정은 10초 안에 지휘관의 의사 결정을 받아, 반격 무기를 결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물리적으로 만만치 않은 시간이다. 더 큰 문제는 현존하는 무기체계로는 이러한 극초음속 대함미사일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반함정과 달리 값 비싼 무기인 항공모함에는 조기경보기가 탑재된다. 캐터펄트(사출기)가 장착된 미국 항공모함은 E2C, E2D 조기경보기를 운용하고, 캐터펄트가 없는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은 조기경보헬기를 운용한다. 조기경보기의 순항고도는 10Km이고, 조기경보헬기의 순항고도는 5km이다. 10km의 고도에서는 370Km 밖의 미사일을 최초 탐지할 수 있고, 5Km의 고도에서는 270Km 밖의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다. 공격해 오는 미사일에 대한 충분한 대응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거리다. 대양에서 해전이 벌어진다면 이런 계산이 맞지만, 상대적으로 좁은 해역을 가진 한반도 주변 바다와 여러 섬들이 태평양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동북아 바다에서는 초음속 대함미사일의 위협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또한 동북아 바다는 세계 강대국 잠수함이 우글거리는 야수들의 정글 같은 곳이다. 해상에는 초음속대함미사일의 위협이 상존하고, 수중에서는 잠수함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반도 주변 바다에서는 항공모함에게 안전한 바다는 없다.
한반도 주변에 안전한 바다는 없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국제 분쟁지역에 항공모함을 보내 무력시위를 할 정도의 국제·정치적 역할을 감당할 이유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반도 주변 바다는 육상에서 발진하는 항공전력으로 대응이 가능하고, 동북아 바다는 항공모함을 운용하기에는 좁아 초음속대함미사일과 잠수함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거리에 대규모 군사력을 투입해 대적할 적성국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나라가 항공모함을 보유한다고 해도 항공모함의 역할이 모호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항공모함은 진주만 기습과 같이 원거리에 대규모 군사력을 투사하거나, 미드웨이 해전과 같이 대양에서 적의 항공모함 전단을 상대하거나, 걸프전에서처럼 지역의 제공권·제해권을 장악하는 데 필요하다.
항공모함 도입에 앞서 우리의 안보전략적, 국제정치적 필요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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