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그룹의 대기업 지분 인수를 두고 단순 투자 이상의 전략적 접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허 소송 중인 경쟁사의 모회사 지분을 사들이는가 하면, 경영권이 분산된 그룹을 겨냥한 지분 확보도 반복되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은 올해 들어 LS그룹 지주회사인 (주)LS 지분을 수차례에 걸쳐 3% 가량 매입했다.
증권업계는 호반그룹이 지난 2월부터 지분 매입에 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반그룹은 전선 산업이 유망해 투자 목적으로 매입했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전략적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분 매입 시점은 계열사인 대한전선과 LS그룹 계열사 LS전선 간의 수조원대 특허 소송이 진행 중이던 때와 겹친다. 두 기업은 국내 전선업계 1, 2위를 다투는 경쟁 관계다.
LS전선은 2019년 8월, 대한전선이 부스덕트(대용량 전력 배전 시스템)용 조인트 키트 제품을 통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양사는 5년 8개월간의 특허 침해 소송을 벌였고 1·2심 모두 LS전선이 승소했다. 대한전선은 상고를 포기하며 15억1628만원의 배상금 판결이 확정됐다.
현재는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의혹과 관련해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핵심은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노하우가 대한전선 측에 유출됐는지 여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해 6월부터 내사에 착수해 지금까지 세 차례 압수수색을 벌였고 대한전선과 건축설계사무소 관계자 등 9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대한전선은 “LS전선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기술 유출로 결론이 날 경우 양사 간 추가적인 민사소송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호반그룹의 LS지분 확보를 두고 전략적 접근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상법상 지분율이 3%를 넘길 경우 ▲임시주주총회 소집 청구권 ▲회계장부 열람권 ▲이사 및 감사 해임 청구권 등의 주주권이 발생한다.
회계장부 열람권을 통해 LS전선의 해저케이블 사업 관련 비용 구조, 투자 내역, 연구개발비 등 일부 자료를 파악할 수 있고, 주주제안권 및 질의권 등을 활용해 LS 측에 의혹을 공식 제기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분 확보는 결국 향후 수사 및 소송 국면에서 유리한 전략적 지형을 조성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저케이블 관련 경찰수사는 상반기 내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호반그룹이 LS지분을 가지고 민형사상의 소송을 하는데 딜을 걸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호반그룹의 이 같은 지분 매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22년에는 사모펀드 KCGI가 보유하던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지분 약 17.43%를 인수해 단숨에 2대 주주에 올랐다.
지난 3월 열린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주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호반건설 관계자는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호반그룹이 지분을 사들인 두 기업의 공통점은 지배구조의 집중도가 낮다는 점이다.
한진칼은 조원태 회장의 개인 지분이 5.78%에 불과하고,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도 20% 수준에 그친다. LS 역시 오너 일가 44명이 0%대 소액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으며 개인 최대주주인 구자은 회장의 지분은 3.63%에 불과하다.
LS는 자사주 약 15%를 보유하고 있지만 자사주는 법적으로 의결권이 없어 실질적으로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비중은 낮아진다. 반면 시장에 유통 중인 주식이 전체의 52%에 달해 외부 세력의 연합이나 전략적 투자자의 지분 매입에 따라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LS그룹과 한진그룹은 지난달 28일 동반 성장 및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항공우주, 도심항공교통(UAM) 등에서의 협업을 예고한 이번 협약을 두고, 업계에서는 두 그룹이 향후 경영권 리스크에 대비해 우호적 관계를 다지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정확히 LS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는 파악이 어렵다"며 "지분 확보 목적은 단순 투자가 맞다"고 말했다.
LS 관계자는 "기술 유출 여부에 대한 경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며, 호반의 지분 매입에 대해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