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경그룹이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해 애경산업 매각을 검토 중이다. 항공 화학 계열사 대신 그룹 모태인 생활용품·화장품 계열사를 매각하는 그룹의 전략이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애경그룹은 삼정KPMG를 최근 주관사로 선정하고 애경산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 등이 보유한 애경산업 지분 63.38%가 매각 대상이다. 골프장 중부CC 등 비주력 사업도 매각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AK홀딩스의 지난해 말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535억이다. 반면 1년 안에 상환해야 할 부채인 유동부채는 2조6735억원으로 현금 대비 단기부채가 7배 수준이다.

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핵심 계열사인 제주항공과 AK플라자가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자금 지원이 이어진 데서 비롯됐다.

업계에서는 애경그룹이 항공과 화학 계열사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애경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애경산업(생활용품·화장품) ▲애경케미칼(화학) ▲애경스페셜티(구 애경특수도료) ▲제주항공 ▲AK플라자(유통) 등이 있다.

애경그룹은 1954년 비누, 세제 등을 만드는 '애경유지공업 주식회사'를 모태로 성장했다. 애경산업은 1985년 4월 그룹에서 생활용품 사업 부문을 떼어내 설립된 회사로 그룹의 모태 사업인 셈이다.

사업 부문은 화장품과 생활용품으로 나뉘며 '케라시스', '2080 치약', 화장품 '루나' 등의 브랜드를 보유 중이다.

오랫동안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 애경산업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6791억원, 영업이익 47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23.5% 하락했지만 3년 연속 수백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다른 계열사들의 실적하락 폭은 더욱 컸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9358억원, 영업이익 799억1234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2.3%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52.9% 하락했다. 이는 지난해 말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의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실적이다.

애경케미칼은 같은 기간 매출 1조6422억원, 영업이익 153억3485만원을 기록했다. 각각 8.4%, 66% 하락한 수치다.

업계에서는 애경 그룹 자회사 중 애경산업이 가장 빨리 턴어라운드할 수 있는 업종으로 보고 있다. 화학 업종은 침체 국면에 접어든 반면 화장품 시장은 성장세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편으론 애경산업의 입지가 애매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기준 매출 비중은 화장품이 35%, 생활용품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애경산업의 화장품은 기존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신흥 주자인 구다이글로벌(조선미녀)과 에이피알(메디큐브)에 자리를 내어주고 5위로 밀려났다. 생활용품 또한 LG생활건강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항공, 화학 업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그룹의 전략이 타당하다고 내다봤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개발한 BCG매트릭스에 따르면 성장 가능성도 없고 현 상황도 좋지 않은 경우 도그(Dog) 사업이라고 한다. 반면 시장 점유율이 높고 성장 가능성도 높은 사업을 스타(Star) 사업, 시장 점유율은 높지만 성장은 둔화된 사업을 캐시카우(Cash Cow)라고 한다"며 "애경그룹이 캐시카우 사업을 활용해서 스타 사업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항공업에다 투자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황용식 교수는 "제주항공의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통합 저비용항공사(LCC)가 나오기 전까지는 규모 면에서 LCC 1위이고, 전문성을 오랫동안 보유해온 강자다"며 "제주항공을 키우는 그룹의 전략이 맞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반적인 세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공산품 시장이 프리미엄 제품과 초저가 제품만 살아남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생활용품과 화장품은 입지를 갖춘 브랜드냐 아니냐에 따라서 사활이 갈린다"며 "애경산업의 경우 화장품과 생활용품이 모두 고전중이고, 브랜딩력이 약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비전이 없다"고 내다봤다.

이종우 교수는 "애경산업은 꾸준히 실적을 내고 있기 때문에 현재가 매각 적기이고, 중국산 저가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이 쏟아지는 현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면 매각이 힘들어질 것이다"며 "반면 항공 사업은 유망 산업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실적이 회복될 것이며, 화학은 팔지 못한다고 보는게 맞다"고 덧붙였다.

애경그룹은 "그룹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중이며,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