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중간점검 위해 모인 전문가들…"결론은 상법 개정"

22개 기업만 밸류업 참여 안내공시
홍콩 기관 “이사충실의무 없어 오너기업 밸류업 참여 안 할 것”
김규식 변호사 “삼성물산 대법원판결로 한국 30년 후퇴”

김나경 승인 2024.09.20 15:57 의견 0
20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서울시 영등포 전경련회관에서 ‘밸류업 중간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김나경 기자)

학계와 기업계, 투자업계 전문가들이 지난 4개월간 진행된 밸류업 정책을 중간 평가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입을 모아 대주주의 횡포를 지적했으며, 근본적으로 모든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입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서울시 영등포 전경련회관에서 ‘밸류업 중간평가,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김우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밸류업은) 주주환원이 목표가 아니다. (주주환원은) 수단이고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주주환원을 더 하든지 재투자를 더 하든지 해서 기업 가치와 시가총액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우리나라처럼 투자자 보호가 돼 있지 않은 나라에서는 (재투자보다) 오히려 주주환원을 하는 게 대리인 문제 완화와 정보 비대칭 완화 등으로 기업 가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식 변호사는 “우리는 밸류를 현금이라고 생각하지만, 현금이 아니라 현금이 흐르는 자산 주위로 형성되는 자산 에너지의 본체다. 회사가 재무상태표상 1조원의 자기자본을 가지고 있다면 이건 단지 캐시다. 이 회사가 10조원에 거래된다면 주가순자산비율(PBR) 10배의 아주 높은 밸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반대로 자기자본은 1조원인데 시가총액이 5000억원이라면 밸류가 50% 할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순이익으로 주주환원을 하면 투자재원이 부족하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순이익은 원재료, 연구개발(R&D), 인건비 등 성장을 위한 모든 재원을 차감한 금액이다. 또한 갑자기 대규모 투자 기회가 생겼다는 것 역시 경영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성장 전략은 보통 5년, 10년 단위로 계획해 모든 재원을 계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주주 보호 입법 없어 (이익을) 주주환원하지 않고 회사에 계속 쌓는다. 투자도 하지 않고 배당도 하지 않아 계속 주가가 하락한다. (이렇게 주가가 하락한 후) 불공정한 합병 등으로 주주를 탈취한다”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 대법원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없다고 판결한 것이 우리나라 거버넌스를 30년 후퇴시켰다. 이후 LG화학이 물적분할 하는 등 온갖 수탈 행위가 범람했다. 대법원의 판결로 아주 대범하게 주주를 수탈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빨리 상법 개정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법원 판례가 저래서 이제 입법 외에는 방법이 없다. 회사는 주주요구 수익률을 제시하게 되어있다. 이걸 못 지키면 (이사는) 그만두셔야 한다.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이사도) 나가셔야 한다. (상장 때) 너무 높은 수익률을 제시했기 때문에 이걸 못하면 나가셔야한다. 미국의 경우는 감옥에 들어가서 못 나온다”고 말했다.

최준철 브이아이피자산운용 대표는 “자본시장의 신뢰를 받게 되면 알게 모르게 각종 비용이 줄어드는 유익을 누릴 수 있다. 대표적으로 버크셔 해서웨이는 오랜 기간에 걸친 워렌 버핏의 신뢰로 자본을 엄청나게 싸게 조달한다. 신뢰받고 칭찬받는 수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업에 도움이 된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회사를 지지할 때 여러 편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회사가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20년 전 전설적인 장면이 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회장님이 자꾸 주주가 마이크 들고 뭐라 하니 ‘당신 몇 주나 가지고 있어’라고 한 장면이다. 관점을 바꿔야 한다. 지배주주가 지분 40%, 일반주주가 60%를 가지고 있다면 60%를 그냥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동업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벤처기업의 경우 주주를 굉장히 무서워한다. 주주들이 기업에 돈을 꽂아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장기업들은 주주가 계속 바뀌다 보니 처음에 돈을 준 사람, 내 자본에 기여를 한 사람이 아니니 주주의 권리, 계약관계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며 “근데 주식을 골프장 회원권이라고 생각해 봐라. 골프장 회원권을 5억원을 주고 샀는데 골프장에서 분양할 때 산 사람이 아니라고 홀대하진 않는다. 권리를 승계한 것이기 때문이다. 골프장 회원권을 가진 사람에게 너는 분양받을 때 사람이 아니라 골프장을 이용할 수 없다고 하면 그 회원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황당하겠나”고 말했다.

전종언 마이알파 매니지먼트 한국 대표는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큰 회사를 빼면 10년 동안 수익률이 3% 성장했다. 게다가 이를 US 달러로 환전하면 마이너스 20%다. 외국 달러 투자 입장으로 10년 동안 한국 주식을 하면 마이너스 20%다. 미국, 일본, 인도, 대만과 비교하면 100~200% 차이 나기 때문에 한국 투자 자체가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많이 없어지고 있다. 시장 자체가 이 정도면 펀드 매니저로서 할 수 있는 게 없고 다른 시장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면 당연히 한국 시장의 유동성 밸류에이션, 한국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모두 훼손된다. 일본 회사가 아주 적은 지분을 비싼 가격에 투자자들에게 팔고 큰 자금으로 설비와 투자, 고용 등 R&D를 할 수 있다면, 한국 기업은 그만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대량의 주식을 팔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유럽, 일본 심지어 중국 주식에서 100을 투자하면 100이 높은 투자되고 이익이 창출돼 다시 주주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한다”며 “하지만 한국 기업은 많은 경우 이사회가 독립적이지 않아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투자나 현금유출을 허용하고, 자금이 많은 상황에서도 주주환원을 하지 않는다”며 “많은 한국 기업은 오너가 있다. 이들은 회사 지분은 10% 정도 가지고 마치 지분이 100%가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국민들의 지분이 더 큰 경우가 많은데 현실은 오너 뜻대로 된다. 손절해야 한다. 그러면 투자한 지분을 다시 되팔려고 하는데, 이때 다른 투자자들이 밸류에이션을 한다. 회사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현금이 이렇게 자꾸 샌다면 (자본이) 1억원이어도 3000만원을 제안하는 거다. 그게 PBR 0.3배이며, 이게 코리안디스카운트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분이 나눠져 있다면 회사의 돈은 모두의 돈이다. 아무리 잘 돌아가도 이런 일이 있으면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 투자자는 오너가 있는 기업은 밸류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추상적인 계획을 내놓을 것이라 본다. 모든 주주를 위한 이사의 충실 의무가 법에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오연석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 전문대학원 교수는 “개량적 접근법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정성적으로 대주주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밸류업 자체가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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