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1년, 학계 “위헌 아냐, 실효성 논의할 때”

권오성 "중처법, 명확성·과잉금지·평등 원칙 모두 지켜"
이근우 "적용대상 축소, 일반 경찰 수사" 주장
민주노총 "위헌논란이 아닌 집행 논의로 넘어갈 때"

김나경 승인 2023.02.06 09:39 의견 0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처법)의 위헌성과 법의 완화·강화를 두고 정경·학계·시민사회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중처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 강화법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의 공동 주최로 '중대재해처벌법 과연 위헌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앞서 지난해 10월 13일 두성산업은 중처법 제4조 제1항 제1호와 제6조 제12항이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원칙 및 평등원칙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창원지방법원에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두성산업은 노동자 16명을 유해물질 트리클로로메탄에 급성 중독시켜 지난해 6월 중처법 위반 1호로 기소됐다.

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운동본부와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의 공동 주최로 '중대재해처벌법 과연 위헌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김나경 기자)

◆중처법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오히려 과하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중처법을 위헌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권 교수는 "법규범이 명확한지 여부는 본질적으로 정도의 문제이며, 판단 주체에 따라서 명확한가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중처법 판단 주체이자 수범자(규범의 적용을 받는 자)인 경영책임자 등은 일반인 내지 종사자와 비교할 때 안전 및 보건 관련 전문가나 법률전문가 등으로부터 폭넓은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있으므로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의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고 그에 비추어 의무를 준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중처법 제4조 제1항 제1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여 불명확한 것이라기보다는 개별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예방해야 하는 고유한 위험이 다양하고, 그에 따라 개별 사업장마다 취해야 하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 의무되 개별화돼 있을 뿐"이라며 "법률조항 자체의 불명확성이 아니라 법률 적용의 문제이며, 헌법재판소는 법률 적용의 문제에 관해서는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다혜 변호사 역시 "많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상 유해 및 위험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모르겠다고 하지만, 대형 로펌 등 전문가들이 많은 해설서를 내놓은 지 오래"라며 "대형 로펌의 컨설팅을 받는 경영책임자들이 이를 모르겠다고 하는 게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보건상 유해 및 위험 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도 모르는 경영책임자가 어떻게 그동안 사업을 경영했는지 의심이 든다"고 일침을 가했다.

앞선 권 교수는 과잉금지원칙 위헌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중처법 처벌조항은 벌금형 선택이 가능하며 징역형도 1년 이상으로 돼 있어 하한이 과도하게 높다고 보기 어렵다"며 "법관은 죄질의 경중이나 책임, 비난 가능성을 살펴 벌금형을 선택할 수도 있고, 징역형은 선택하되 감경할 수도 있으며, 선고유예나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도 있다. 법관이 죄질의 경중을 고려해 그 책임에 맞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큰 장애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평등원칙 위반 관련 중처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위반죄는 수범자가 다르며 일견 산안법상 의무위반이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보다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는 기업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산안법상 안전보건 조치의무보다 상위의 더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의무라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산안법은 일정한 규모의 사업주로 하여금 '사업장' 단위로 공장장, 현장소장, 안전담당 임원 등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선임하고 사업장의 안전보건 업무를 위임하도록 한다.

권 교수는 "중처법은 '고의로'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라는 결과를 야기한 경우에만 개인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한다"며 "중처법에서 정한 법정형이 과도하다는 비판이 오히려 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적용대상 축소하고 합동 수사해야

중처법 적용대상을 축소하고 수사를 일반 경찰이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중처법 부칙 제1조 단서는 지난해 시행 당시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다.

즉, 내년부터 근로자 5인 이상인 사업(장)에도 중처법이 전면 시행된다는 뜻이다.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지금의 중처법 수사체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지금의 만성적인 수사지연이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1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삼표산업의 경우 중처법과 산안법 위반 혐의는 고용노동부에서, 업무상과실치사죄 등은 경찰에서 각각 수사했다.

또한 2022년 1월 중처법 시행 이후 229건이 중처법 위반으로 입건됐으며 그중에 검찰에 송치된 건은 34건, 검찰이 기소해 재판에 넘긴 건은 11건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처벌받은 기업은 없다.

전승태 경총 산업안전본부 팀장 역시 "중처법은 적용대상, 범위 등이 모호해 고의성 등을 입증하기 어려워 실효성이 의심된다"며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기업이 많다"고 유예를 주장했다.

앞선 이 교수는 "헌법 제268조(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를 개정하여 제2항으로 '업무상의 중과실로 사람을 사망이나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어 "과실과 중과실은 개념이 비교적 명확하여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중처법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에 과실, 중과실 처벌규정을 도입하는 대신, 중처법에는 중대산업재해가 일정 기간 안에 반복적으로 발생한 경우에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와 법인 자체를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두는 것이 어떨까"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지금의 규정체계로는 지나치게 난삽하게 규정돼 적용 가능성이 작고 위헌적 요소가 크기 때문에 삭제하는 편이 낫다"며 "이 분야의 사고에 대해서 별도 법률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잠정적으로 앞서 언급했던 형법에 신설돼야 할 '업무상중과실치사상죄'로 처벌해도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용균재단 김미숙 대표(우측에서 2번째)가 권오성 교수의 주장에 반대의견을 표하고 있다. (사진=김나경 기자)

◆위헌이 아닌 집행으로 논의 넘겨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중처법은 모호하지 않다. 사업장이 다양할 뿐"이라며 "위헌 논란이 아닌 집행을 어떻게 할지로 논의가 넘어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은 "중처법의 목적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감축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하지만 중처법 관련 논의과정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최소한 몇 명의 노동자는 죽어도 되는지 노동계에서 알려달라고 한 발언도 나왔다"며 "정부부처에 이런 인식과 발상이 깔려있다"고 비판했다.

서 차장은 고용노동부의 주체성 부족도 지적했다. 그는 "현재 고용노동부(이하 고노부)에서 산업안전 육성 및 지원에 쓰는 예산은 20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며 "기획재정부 측에서 예산편성을 막고 있으며, 고노부 역시 산하 안전 공단에 하청 맡기듯 역할을 위임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강검윤 고노부 중대재해감독과 과장은 "고노부는 산업재해 수사를 위해 인력이 더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예방 인력을 줄이지는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 과장은 "현재 고노부 인원 80%는 예방사업에 종사하며 근로감독관으로 활동하는 인력은 20%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느 사건 수사에 있어서도 경찰, 검찰과 자료 공유를 하고 있다"며 "산업재해는 안전공학, 산업안전 측면에서 봐야하는 특수성이 있다. 일반 형사사건과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동건설 고(故)정순규 유가족 정석채씨는 "중대재해, 산업재해에서 고노부는 노동자 편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정 씨는 "해운대 엘시티 사건과 현대산업개발 사건에서 내부 고발자가 없었으면 고노부는 잘못을 안 밝혔을 것"이라며 "고노부는 현대산업개발 조사를 나가기 전 사전에 고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고노부는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며 “중처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를 기대하거나 법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재해 예방에 더 노력해 줄 것을 기업에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이론적 정합성을 따져 중처법 위헌성을 주장하기보다는 형사법의 기본원칙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중대재해 발생의 예방이라는 입법취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해석론을 모색하는 것이 법학자가 풀어내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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