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행동주의 투자자가 넘쳐나는 나라를 향해

행동주의 펀드가 활약할수록 경영자는 긴장한다
행동주의 펀드와 주가조작 세력을 혼동하면 곤란
기업 사냥꾼에 대한 최고의 대응은 잘 경영하는 것

김선엽 승인 2023.02.02 17:48 | 최종 수정 2023.02.04 09:02 의견 0

영화 <프리티 우먼>의 남자 주인공 리차드 기어는 1980년대 후반의 미국에서 선량한 기업을 조각조각 해체해 팔아치우는 M&A 전문가다.

실제 모델은 칼 아이칸이라는 유명한 기업사냥꾼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주주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에서조차 M&A를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 경영자는 흔히 돈만 쫓는 냉혈한으로 인식됐다. 이 영화에서도 리차드 기어는 영화 마지막 자신의 직업을 반성하며 여자 주인공에게 달려간다.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약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주로 진보 진영에서 소액주주 운동의 형태로 전개된 탓에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과 연계해 보는 시각이 상당하지만, 행동주의 펀드의 근간이 되는 주주자본주의 개념을 가장 먼저 제시한 이는 주류 경제학자 중에서도 가장 오른 쪽에 있는 밀턴 프리드만이다.

이사회로 들어가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 소위 행동주의 펀드다.

필자가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들로 인해 상장사 경영진이 '경영'이라는 영역에서 누리는 독점이 해소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에서 경영진은 지배주주 한 명에게만 잘 보이면 자신의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다. 따라서 주주 전체의 이익에 소홀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이 늘어날수록 대다수 기업의 경영진들은 행동주의 펀드를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게 되고 경영 성과가 시원치 않으면 자신이 교체될 수도 있다는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독점이 파괴되고 경쟁이 보장되면, 경영 성과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장기업의 부실 경영을 예방하는 효과가 생기는 셈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경영진이 주주들의 단기이익의 실현만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주장이 미국에서도 나온다.

우리 언론에서는 행동주의 펀드를 겨냥해 유독 '먹튀'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예컨대 사모펀드가 인수 기업의 알짜 자산을 매각해 배당을 챙기고 철수한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가 과연 단기 시세차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지는 물음표다.

언젠가 지분을 매각하고 나가야 할 행동주의 펀드 입장에서는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주가는 기업의 미래가치를 오롯이 반영한다. 알짜 자산을 팔아치우거나 장기 투자를 줄인다면 기업의 가치는 속절없이 추락할테고 이렇게 되면 행동주의 펀드 역시 싼값에 자기 지분을 넘기고 나와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와 주가조작 세력을 여전히 혼동하는 시각을 이제는 청산할 때도 됐다.

재계를 대변하는 국내 여러 단체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자고 하지만 이는 최대주주 또는 그가 임명한 경영진에게 독점적 경영권이란 특권을 주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배타적 권리를 줄수록 성장은 더디기 마련이다. 경쟁만이 혁신을 가속화 한다.

행동주의 펀드에 가장 잘 대응하는 것은 기업을 잘 경영하고 주주와 소통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칼 아이칸은 "어떤 사람들은 AI를 연구해서 부자가 되지만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연구해서 돈을 번다"는 말을 했다.

한국 자본주의가 어리석은 길을 갈수록 엉뚱한 이에게 돈 벌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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