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尹의 '노조악마화', 성공의 충분조건 될 수 없다

화물파업 승리에 도취돼 '법치'란 칼날을 휘두르지만
이중구조 문제에 있어 대기업 사용자와 노조는 '한배'
사적영역에서 정부 역할은 한계 분명...정치력 발휘를

김선엽 승인 2023.01.12 18:13 | 최종 수정 2023.01.12 18:19 의견 0

'동일노동 동일임금'

동일한 직무에서 동일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동일한 임금을 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한국의 노동계가 지난 수 십년간 줄기차게 주장한 아젠다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 편에 선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화두를 들고 나왔으니 아이러니하다.

물론 구호는 같지만 방향은 다르다.

노동계는 원청·정규직 수준으로 하청·비정규직의 임금 수준과 고용 안정성을 보장할 것을 요구해 왔다. 상향평등이다.

반면 윤 대통령은 노노(勞勞) 간 비대칭 구조를 "착취"라고 규정했다. 대기업·정규직 노조가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하향평등이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제공]

우리나라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공정의 가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윤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신년 화두로 꺼내든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계의 요구가 수십 년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듯이 윤 대통령의 구상도 헛손질로 끝날 공산이 크다.

1987년 이후 한국 노조운동이 성장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임금과 막대한 기업복지, 연공급(개인의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임금이 결정되는 임금체계) 질서 등 '비경쟁적 내부노동시장’이라는 독특한 구조가 완성됐다.

이후 대기업은 노조와의 암묵적 합의를 통해 위험공정을 외주화하거나 비정규직을 늘리는데 주력했다. 긴 역사 속에서 양자의 결탁은 매우 고착화됐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은 노조를 악마화 하면 노동의 이중구조 문제를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듯싶다.

‘노조 부패’를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한국 사회의 3대 부패로 규정함과 동시에 노조 회계공시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또한 대기업·정규직 노조원과 중소기업·비정규직 노조원의 임금·근로 조건 격차 문제를 노동자 간 ‘착취·피착취’ 문제로 진단했다.

노조를 적폐로 규정하며 마녀사냥에 나서겠다는 것인데 귀족노조에 진절머리를 내는 지지자들에게는 환호를 받을지 몰라도 이런 ‘反정치’가 성공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노사 문제는 사적인 영역이다. '법치'라는 칼을 휘두른다고 해결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업무보고에서 올해를 공정과 법치를 위한 노동개혁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는데 과거 정부는 법을 집행할 줄 몰라서 노동 문제를 해결 못 한 것이 아니다.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그 다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게 문제다.

윤석열 정부는 섣불리 진창에 뛰어들기 전에 상대방과 무엇을 주고받을지 고민해야 한다.

일례로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은 근로자의 권리(108위)가 최하위인 동시에 정리해고 비용(114위) 역시 매우 높은 기형적 국가다. 또 임금 결정의 유연성(63위) 역시 중위권으로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 걸맞지 않다.

과보호 받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반대급부로 충분한 실업급여체계를 구축, 실질적인 이직 및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빅딜’이 필요하다.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한 노동개혁이라면 국민들도 수긍할 것이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당시 도입된 ‘임금피크제’는 기업에게도 노동자에게도 ‘윈윈’이란 평가를 받는다.

노조를 협상의 파트너가 아닌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는, 지금과 같은 감정적 접근은 초보의 수다. 악마와의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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