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함대] 푸틴과 전쟁범죄

함태영(군사 칼럼리스트) 승인 2022.05.02 10:52 | 최종 수정 2022.05.02 11:14 의견 0

인류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잔혹한 전쟁범죄를 저지른 인물은 징기스칸일 것이다. 역사가들은 징기스칸과 몽골군의 정복전쟁으로 당시 전세계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4000만명이 학살을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징기스칸이 호라즘왕국을 상대로 정복전쟁을 수행할 때 몽골군의 행위는 현대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몽골군은 부하라 전투에서 성문을 열고 항복한 부하라 시민들을 저항군을 상대하는 화살받이로 사용했고, 젊은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또 효용 가치가 없는 시민들을 모두 죽이고, 도시를 약탈한 후 부하라시 전체를 불태워 버렸다.

사마르칸트 전투에서는 부하라에서 끌고 온 시민들을 또 다시 화살받이로 사용하고, 항복한 사마르칸트 수비군 전부를 처형했다. 호라즘의 또 다른 도시인 우르게쥐에서는 젊은 여성과 아이들을 노예로 삼고, 나머지 시민들은 저항했다는 이유로 모두 학살했다.

사마르칸드를 함락 시키기 위해 동원된 몽골군이 대략 5만명인데, 몽골군 한 명당 24명의 시민을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백만명 이상의 시민이 몽골군에게 학살당한 셈이다. 몽골군의 이런 행위는 모두 현대의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당시는 전쟁범죄의 개념이 없을 때이다. 인류 문명이 발전하면서 근대에 들어 비록 잔혹한 전쟁 중이라도 용납할 수 있는 행위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구분해 용납할 수 없는 행위는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리버법규와 헤이그조약
전쟁범죄에 대한 명문화된 정의는 전쟁 관습법을 성문법화하면서 정립됐다. ‘리버 법규(The Lieber Code)’와 ‘헤이그 조약(The Hague Conventions) of 1899 and 1907’이 대표적이다.

‘리버법규’는 미국의 남북전쟁 중 독일계 미국 법학자인 프란츠 리버(Franz Lieber)가 기초하고, 링컨 대통령이 1863년 4월 24일 공표했다.

남북전쟁 중 스파이 처리 문제, 전쟁포로 문제 등으로 윤리적 딜레마(Dilemmas)를 겪고 있던 북군 병사에게 전시 행동규범을 명확히 제시하기 위해 제정됐다.

‘리버법규’는 전쟁 관습법을 성문법으로 제정한 첫번째 법규로 평가받는다. 계엄령, 군사법권, 전시에 시민과 시민 재산보호, 전쟁 범죄에 대한 처벌, 포로에 대한 처우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리버법규’가 미국이라는 특정국가에서 전쟁범죄를 명문화한 첫번째 법률이라면, ‘헤이그 조약’은 각국의 비준을 받은 전쟁범죄에 대한 첫번째 다자간 국제조약이다.

‘헤이그 조약’은 1899년과 1907년 두 차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서 채택된 조약이다. 1907년 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는 이준 열사가 대한제국의 외교주권을 강탈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참석을 시도하기도 했다.

‘헤이그 조약’은 ‘리버법규’의 내용을 준용하고, 국제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 전쟁법(선전포고, 교전법규, 전시행동, 주권, 영토 등에 대한 국제법), 전쟁범죄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당시에도 강대국이었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소련(러시아), 일본 등이 모두 ‘헤이그 조약’을 비준했다.

하지만, 조약 비준 후 발발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범죄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특히, 2차대전 중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유대인 600만명을 집단학살(Genocide)하는 만행을 자행했다.

2차대전 종전 후 승전국(연합국)의 주도하에 유럽에서는 독일 나치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Nuremberg Trials 1945)이 열렸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한 극동국제군사재판(Tokyo Trials 1946)이 열렸다.

승전국들은 양 재판에서 전쟁범죄 행위자와 그러한 행위를 명령한 자를 처벌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부는 나치의 가장 악질적인 전쟁범죄자 24인을 기소하고, 12명에게 사형(교수형)을 선고했다. 죄명은 평화에 반한 죄(Crimes against peace), 전쟁범죄(War crime),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 등이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최초로 정의된 ‘평화에 반한 죄’는 국제법상 금지된 전쟁을 계획, 준비, 실행한 죄로, 독소불가침 조약을 위반하고 침공한 독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힌 소련의 주장으로 도입됐다. 이 재판에서 규정하고 심판한 범죄들은 이후 국제연합에서 ‘평화에 반한 죄’(침략범죄), ‘전쟁범죄’, ‘인도에 반한 죄’에 관한 법학을 발달시키는 기초가 됐다.

1946년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는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의 선례를 따라 일본전범 28명에 대한 심판이 이뤄졌다.

죄명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의 죄명과 동일한 평화에 반한 죄(Crimes against peace, A급 전범), 전쟁범죄(War crime, B급 전범), 인도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 C급 전법) 등이다. 7명이 사형, 16명이 종신형, 2명이 유기금고형에 처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A급 전범’은 가장 악질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큰 차원에서 전쟁을 준비하고 실행해 평화를 파괴하고, 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평화에 반한 죄’를 범한 자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후 전쟁범죄에 대한 상설적인 국제형사재판소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냉전에 따른 양극화로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전경. [사진=온라인]

▲2002년에야 국제형사재판소 설립
국제형사재판소 설립문제가 다시 국제적 관심사로 등장한 계기는 1990년대 초 유고내전과 르완다와 보스니아에서 인종학살사태이다.

국제사회는 1998년 7월에 로마에서 열린 국제연합 외교회의에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과 운영의 기초가 되는 로마 규정(Rome Statute)를 채택하고, 2002년 7월 1일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를 네델란드 헤이그에 설립했다.

재판부와 검사부, 사무국 등으로 구성된 국제형사재판소는 로마규정을 비준한 국가에 대해 관할권(Jurisdiction)을 가진다. 로마규정을 비준한 국가에서 발생한 전쟁범죄, 비준 국가의 시민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기소할 수 있다. UN안전보자이사회가 제기한 전쟁범죄에 대해서도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개별국가의 법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개별국가의 법정이 전쟁범죄 행위자를 기소하지 않거나 기소할 수 없을 때 관할권을 발동해 개입한다. 처벌 대상은 전쟁범죄를 일으킨 개인이다.

국제형사재판소가 관여하는 범죄는 크게 4가지다. 집단학살(Genocide),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전쟁범죄, 평화에 대한 죄(Crimes against peace) 등으로, 공소시효는 없다. 2022년 3월 현재 123개국이 로마협정을 비준했다.

폐허가 된 마리우폴 시내. [사진=온라인]

현재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에서는 러시아군에 의한 전쟁범죄로 의심할 수 있는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난 것으로 보고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부차(Bucha)시는 지난달 12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이 살해한 것으로 보이는 민간인 시신 403구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손과 발을 결박당한 채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마리우폴에서는 산부인과 병원과 어린이 병원이 폭격을 받아 임산부와 어린이가 사망했다.

어린이 표식이 있던 마리우폴 극장도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아 3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마리우폴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마리우폴시는 러시아군의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으로 도시 전체의 90% 이상이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군 정보국은 루한스크 지역에 억류된 우크라이나군 포로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하는 러시아군 통신을 도청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 여성들을 강간했다는 증거가 현지에서 속속 들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한 여성은 러시아 군이 남편을 살해하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본인을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모두 국제형사재판소에서 규정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 회원국 탈퇴한 러시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국제형사재판소 회원국이 아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문제로 2016년 회원국에서 탈퇴했다. 우크라이나는 국제형사재판소 회원국이 아니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1년전인 2013년에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권을 받아드렸다. 즉,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발생한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당국과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권을 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당국과 우크라이나에 관할권이 있는 국제형사재판소는 우크라이나 전쟁범죄 현장을 조사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지난 3월 체포된 러시아 Su-34 전폭기 조종사는 전쟁범죄로 우크라이나 법정에서 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 조종사는 전투기가 격추돼낙하한 후, 그를 발견한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크라이 검사는 그를 종신형으로 기소했다. 이 조종사와 같이 전쟁범죄 행위가 명백하게 드러나면 우크라이가 처벌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처벌할 의지가 없다면,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권을 발동해 러시아 전쟁범죄자의 신병을 인도받아 기소, 처벌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러시아 지휘관과 병사들은 신병만 확보하면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국제여론이 일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해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관련해 그를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뉘른베르그 국제전범재판. [사진=온라인]

▲푸틴 실각해야 처벌 가능할 듯

전문가들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 재판에 회부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진단한다.

푸틴의 협의는 크게 ‘전쟁범죄 지시 또는 방조’와 ‘평화에 반한 죄’ 2가지다. ‘전쟁범죄 지시 또는 방조’에 대해서는 푸틴 대통령의 협의가 입증이 되어야 한다. 즉, 푸틴대통령이 전쟁범죄를 지시했고, 이 지시에 의해 명령 라인에 따라 러시아군에 전달돼 러시아군이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혐의가 입증되면 ‘전쟁범죄 지시 또는 방조’에 대해서 국제형사재판소가 푸틴을 기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가원수인 푸틴대통령의 신병을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기지 않을 것이다.

‘평화에 반한 죄’에 대해서는 푸틴의 협의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가 국제형사재판소의 회원국이 아니어서 푸틴의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 UN안전보장이사회도 푸틴을 기소하라고 요구할 수 있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해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푸틴을 전쟁범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정적 상황을 대입해야 한다.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하는 전쟁범죄는 공소시효가 없다. ‘전쟁범죄의 지시 또는 방조’에 대해서 푸틴의 협의가 인정되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체포영장을 발급할 수 있다. 당장 집행할 수 없겠지만 푸틴이 실각해 국제형사재판소가 푸틴의 신병을 확보하면 그를 재판정에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평화의 반한 죄’에 대해서도 푸틴의 실각 후에나 가능한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다.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 푸틴을 기소할 것을 요구하고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푸틴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가능한 시나리오지만, 당장 그를 법정에 세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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