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함대] 흑해를 뒤덮은 검은 전운

함태영(군사 칼럼리스트) 승인 2022.02.11 14:41 | 최종 수정 2022.02.11 14:42 의견 1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흑해 연안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러시아 흑해함대가 보유한 Kilo급 잠수함 Krasnodar호.[사진=위키피디아]

유럽 남동부와 아시아 사이에 있는 흑해(the Black Sea)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반대하는 러시아는 10만명 이상의 병력과 기갑장비, 전투기 등을 동원해 우크라이라 북·동측을 에워쌌다.

우크라이나 남쪽에는 러시아 4대 함대(북해함대, 발틱함대, 흑해함대, 태평양 함대) 중 하나인 흑해함대(The Black Sea Fleet)가 자리잡고 있다. 서쪽을 제외한 북,동,남 국경이 러시아에 포위되어 있는 모양새다.

러시아가 언제 침공해도 누구도 ‘갑자기’를 외치지 않을 상황이다. 러시아의 실력행사에 맞서 NATO도 흑해로 진입하는 길목인 지중해에서 연일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NATO는 올 4월까지 계속되는 ‘Mission Clemenceau 22’에서 미국, 프랑스, 이태리의 3개 항모전투단을 동원해 지중해에서 대규모 훈련(Tri Carrier Operations)을 전개한다.

이 훈련에는 미국의 해리 S. 트루만(Harry S. Truman) 항모전투단(Carrier Strike Group), 프랑스의 샤를드골(Charles de Caulle) 항모전투단, 이태리의 카보르(Cavour) 항모전투단이 참여한다. 항공모함 3척, 항공모함 호위함정/잠수함 20여척, 함재기 100여척이 동원되는 대규모 해상 군사훈련이다.

특히, 일부 함정과 전투기는 러시아 흑대함대가 진을 치고 있는 흑해에 전개될 예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조짐이 보이면 3개 항모전단을 터키의 보스포로스 해협을 넘어 흑해로 밀어 넣을 기세다.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러시아 흑해함대는 보스포로스 해협에서 수상함과 잠수함을 동원해 NATO 함정의 흑해 접근을 차단하고 수상함과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Kalibr 함대지 미사일로 우크라이나 내륙 깊은 곳의 전략 목표를 타격할 것으로 보인다. 또 대규모 상륙전단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남쪽 해안에서 대규모 상륙작전을 전개할 가능성도 있다.

아군에서 적군으로..옛 전우에 함포 겨누는 흑대함대

제정 러시아 캐서린 2세(예카테리나 여제) 당시인 1783년 5월 창설된 흑해함대는 러시아 4대 함대의 하나로, 흑해, 아조브해, 지중해를 관할한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Sevastopol)을 모항으로 2만5000명의 병력과 40여척의 전투함, 7척의 잠수함, 다수의 지원함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 해군은 15척의 함정을 보유한 소규모 해군이다. 흑해함대와 우크라이나 해군은 역사적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전우였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적군이 되어 서로에게 함포를 겨누게 됐다.

흑해함대 미사일 순양함 Moskva. [사진=위키피디아]

1991년 소련이 해체하기 전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일부로, 러시아인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인들도 흑해함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소련의 해체와 우크라이나의 독립으로 흑해함대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에 위치하게 된다. 흑해함대의모항인 세바스토폴이 소련 영토에서 우크라이나 영토로 바뀐 것이다. 소련 해체 당시 흑해함대는 8만병의 병력과 69척의 주요함정(항공모함 3척, 미사일 순양함 6척, 잠수함 29척 포함), 235대의 항공기와 다양한 보조함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함대 분할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흑해함대를 합동지휘(Joint Command)하는 데 합의하고 함대사령관은 두 나라의 대통령이 공동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하지만, 흑해함대 장교의 대다수가 러시아인이어서 러시아가 함대의 주도권을 가졌고, 함대 사령관도 러시아인이 임명됐다.

두 나라는 1997년 함대분할조약을 체결한다. 러시아가 흑해함대의 자산 81.7%를 소유하고, 우크라이나는 18.3%를 소유하기로 하는 내용이다.

러시아는 더 많은 흑해함대 자산을 가져가는 대신 우크라이나에 약 5억3000만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는 흑해함대 기지를 2017년까지 20년간 조차하는 댓가로 매년 약 1억달러를 지불하는 데도 합의했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존중하고 우크라이나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Russian-Ukrainian Friendship Treaty를 체결했다.

러시아 크림반도 침공으로 파국..전력차 커

이 같은 조치로 평화로워 보이던 두 나라 함대의 세바스토플 동거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병합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

당시 러시아는 세바스토플에 정박중인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을 모두(67척) 억류했다. 이 중 노후하거나 전략적 가치가 없는 함정은 우크라이나에 반환했지만, 나머지는 현재도 억류중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우크라이나 해군 전력은 사실상 와해됐다. 우크라이나는 해군 본부를 세바스토폴에서 우크라이나 본토의 오데사로 이전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해군이 현재 보유한 자산 중 러시아 흑해함대에 대항할 수 있는 함정은 3000t급 호위함 1척, 1000t급 초계함 3척이 전부이다.

크림반도 병합 후 러시아는 흑해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해 흑해함대의 전력을 대폭 증강했다. 현재 흑해함대는 기함인 1만2000t급 미사일 순양함 모스크바(Moskva) 함을 비롯해 최신예 Kilo급 잠수함 6척, 3000t급 호위함 5척, 강습상륙함 7척, 소해함 10여척, 다수의 미사일 초계함 등 막강한 해상 전력을 갖추고 있다.

사실상 방어가 불가한 초음속 공대함미사일을 장착한 전투기(SU-25, Su-27, Su-30SM 등)과 상륙작전을 수행할 해병대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의 반접근 지역거부(A2/AD, Anti Access/Area Denial) 자산인 P-800 Oniks 초음속대함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지대함 미사일도 크림반도에 배치돼 있다.

또한 흑해함대는 이 지역에 S-400, S-300, 판치르-S 대공미사일 시스템으로 구성된 다층 방공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흑해 지도.[사진=온라인]

러시아, 제해권·제공권 장악…나토는
전쟁 시작되면 러시아는 흑해의 제공권과 제해권을 장악하고 우크라이나를 압박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지대함 미사일(Neptune anti-ship missile) 등 러시아 해군자산에 위협이 되는 전력부터 공군과 해군의 합동작전을 통해 제거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 전이기 때문에, NATO가 참전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NATO가 참전한다고 해도 몽트뢰 조약(항공모함과 잠수함은 보스포로스 해협을 통과할 수 없음)으로 NATO 자산의 보스포로스 해협 통과가 제한되기 때문에 충분한 함정을 흑해에 투입할 수가 없다.

일부 흑해로 진입한 함정들도 흑해함대의 Kilo 잠수함, 크림반도의 초음속대함미사일의 위협으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육지에서 방어벽을 구축하고 선전하더라도, 우크라이나 남쪽 해안은 대문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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