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조선 최강국이다. 2000년대 초 일본을 밀어내고 세계 1위에 올라선 후 20여년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LNG운반선, 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선 분야에선 거센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고 여전히 세계 최강을 자부하고 있다.
서방선진국의 전유물이던 함정시장에서도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1980년대 함정시장에 진출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등 국내 함정 조선사들은 구축함과 호위함, 잠수함 등의 국산화를 이뤄낸 것은 물론 수출까지 하고 있다.
국내 함정시장은 선도함부터 양산함까지 경쟁입찰로 낙찰자를 결정한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선정된 조선소가 선도함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양산함도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된 조선소가 건조하게 된다.
방사청으로부터 낙찰받은 업체가 시제품부터 양산품까지 경쟁없이 사업을 진행해 납품하는 다른 무기체계와는 다른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도면만 있다면 어떤 조선소라도 양산함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선도함 개발과 양산함 건조를 분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조선소들을 보유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함정시장 신흥강자의 등장
세계조선시장이 바닥을 쳤던 2010년대 중반에 발주된 인천급 호위함의 양산함 입찰에는 일감이 부족한 함정조선소들이 정부가 추산한 원가(예정가격)의 70% 수준에 낙찰받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당시 저가수주를 주도한 가격파괴자는 STX조선해양이었다. 이 조선사는 인천급 호위함 4번, 5번, 6번함을 손익분기점은 무시하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수주하는 무리수를 감행했다. 결국 이러한 저가 입찰은 '승자의 저주'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영을 악화시키는 주범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 등장한 가격파괴자는 STX조선해양의 DNA를 계승한 삼강엠앤티이다. 삼강은 2019년 3월 STX조선해양(현 K-조선)의 방산부문을 인수해 방산업체 자격을 이어받은 신흥 함정업체다.
삼강은 한국 해양경찰의 함정 사업에 적극 참여해 수주에 성공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올해 8월 3000t급 대형경비함 2척을 비롯해 작년부터 총 10척의 경비함(3000t급 경비함 3척, 200t급 경비함 7척)을 수주했다.
삼강은 대형조선소의 전유물이던 전투함 시장에서도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9일 있었던 울산급 Batch-III 2번함(3000t급 전투함정) 건조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내 승자가 됐다.
삼강은 정부가 책정한 적정원가인 기초예비가격(3900억원)의 86% 수준인 3353억원을 투찰해 적격심사 1순위 자격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강은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입찰의 최종 승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관문인 적격심사는 가격점수와 기술점수의 합이 85점이 넘으면 낙찰되는 방식으로, 1순위인 삼강이 무난히 관문을 통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초 호위함은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이 경쟁하던 시장으로, 삼강의 입찰 참가는 의외였다. 주요시장인 해양경찰 경비함 시장을 삼강에 뺏긴 한진중공업의 입찰 참가가 예상됐지만, 결론은 삼강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삼강이 전통의 강자들을 제치고 전투함 시장의 파괴자로 등극했다”고 평가했다.
가격파괴 비결은 외주화..”당할 자 없다”
삼강이 함정시장의 신흥강자로 등장하게 된 비결은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에 있다. 함정 건조에 들어가는 비용은 재료비, 노무비, 경비 등이다. 이 중 재료비는 모든 조선소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가격을 파괴할 수 있는 비밀은 노무비와 경비이다.
삼강은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의 보유는 극히 제한하고 함정 건조에만 필수적인 직무에 대해서만 직영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대형조선소보다 임금수준도 낮다. 또한 생산인력은 거의 전부를 외주화했다.
필수인력만 직영으로 고용하고, 생산인력은 외주화 해 고정비와 간접비를 낮춰 대형조선소가 근접할 수 없는 가격으로 함정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SK그룹 계열사인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은 지난 11월 삼강엠앤티의 지분 36.8%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 조선시장의 가격파괴자가 재계 3위인 SK그룹 계열사가 된 것이다.
삼강의 독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2023년 울산급 Batch-III 3번함, 4번함 입찰에도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삼강의 가격경쟁력을 상대할 조선사는 현재 없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삼강의 해군 함정 시장 본견 진출로 소형 함정을 주로 건조하는 한진중공업부터 일감 부족 상황으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삼강이 이번 호위함 수주에 성공할 경우, 수상함 물량이 부족한 대우조선해양도 직격탄을 맞게 된다.
SK그룹의 뒷배를 가진 삼강엠앤티는 자금력과 원가경쟁력으로 수상함 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에서 남고 뒤로 밑진다”...질적 악화 우려
낮은 가격으로 함정을 건조하면 세금도 아끼고 나쁠 게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첫째, 해군 함정을 발주하는 방위사업청은 앞에서는 남고 뒤로는 밑질 수 있다
방산사업은 실발생원가를 보상해주는 원가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함정 건조에 직접 투입된 비용은 직접비로 계상하고, 간접적으로 투입된 비용은 간접비로 계상한다.
대형함정업체들이 함정 연구개발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설계인력, 연구개발인력은 간접인력이다. 대형 함정 업체의 함정생산 일감이 부족하면 간접인력을 유지에 필요한 간접비가 삼강이 건조할 수 없는 잠수함 및 구축함 등의 건조비로 이전돼 대형함의 가격이 증액될 것이다.
함정을 발주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소형함에서 아낀 비용을 대형함에 다 넘겨주는 구조인 것이다.
둘째, 대형조선소의 함정 연구개발 인력의 이탈을 가져와 장기적으로 함정 연구개발 능력의 저하가 우려된다.
동북아 주변국은 동북아 정세변화로 자국의 해양 방위를 위하여 해군력 강화를 위하여 함정 건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해군이 필요로 하는 경항공모함, 최신예 구축함, 중형 잠수함 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많은 함정 기술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 함정은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양산함 건조의 순으로 건조된다. 기본설계를 수행한 조선소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한다. 양산함은 적격심사에 의한 입찰로 낙찰자를 결정한다.
연구개발 인력, 설계 인력을 보유하지 않아 고정비 부담이 없어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조선소가 양산함을 전부 수주할 경우, 대형조선소는 선도함 외에는 건조물량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대형조선소에 함정 건조물량이 부족해지면, 조선소는 경영부담으로 함정 설계 및 연구개발 인력을 민수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
힘들게 키워 놓은 함정 연구개발인력이 호황의 초입에 있는 상선이나 해양플랜트 사업부로 이전될 경우, 최신예 함정을 연구개발하고 설계할 인원이 부족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이는 주변국의 최신예 전투함과 맞서야 할, 우리 군함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어, 상당히 우려가 되는 상황이다.
세째, 외주인력으로만 최신예 전투함정을 생산할 경우 30년 이상 사용해야 할 우리 함정의 품질 저하가 우려된다.
이번에 입찰된 울산급 Batch-III 2번함은 우리 해군의 최신예 호위함으로 우리 바다를 30년 이상 지켜야 할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는다.
함정에 특화된 숙련 기술인력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일감이 생겼을 때 고용하는 외주인력으로 함정을 건조할 경우 품질 저하는 당연히 발생할 것이다.
"적격심사 기술평가 점수 높여야"
이런 문제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는 수상함 적격심사 기준의 대폭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인력과 직영 생산인력을 보유하고, 함정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업체가 적격심사 기술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또한, 최저가로 투찰한 업체가 적격심사에 우선권을 가지는 규정도 손질하여, 가격과 건조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가장 우수한 업체가 낙찰 받는 방식의 제도개선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울산급 Batch-III 2번함 입찰에 삼강엔앰티가 적격심사 1순위 업체이다. 방위사업청은 이번 적격심사에서 삼강엔앰티가 최신예 호위함을 건조할 능력이 있는 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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