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쥬란’으로 유명한 제약사 파마리서치가 인적분할 계획을 철회했다. 중복상장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는 소액주주들의 반발과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꼼수 논란이 철회의 배경으로 꼽힌다. 자본시장 선진화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상법 개정도 인적분할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파마리서치는 지난 8일 이사회를 열고, 앞서 결정했던 인적분할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파마리서치는 지난 13일 투자를 담당하는 존속법인 ‘파마리서치홀딩스’와 기존 에스테틱 사업을 맡는 신설 법인 ‘파마리서치’로 인적분할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분할 비율은 존속법인 0.74, 신설법인 0.26이었다.

파마리서치측은 “분할의 취지에 공감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우려,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그리고 소통의 충분성이 부족했다는 의견 등을 받아들였다”며 “기업 의사결정은 전략적 필요나 법적 타당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능동적이고 깊이 있는 신뢰 기반의 주주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밝혔다.

▲중복상장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꼼수 지적도 잇따라
파마리서치는 당초 신사업을 분리해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으로 인적분할을 추진했지만, 소액주주와 투자사, 시민단체들의 의견은 달랐다.

파마리서치 최대주주인 정상수 파마리서치 이사회 의장 등이 신설 법인 지분을 파마리서치홀딩스에 현물출자하고 파마리서치홀딩스 지분을 받게 되면 별다른 비용 없이 중복상장 구조가 만들어지고 대주주의 지주회사 지배력이 강화된다면 반발했다. 신설법인인 파마리서치의 비율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지난달 26일 논평을 통해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 상장되는 중복상장 문제는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 핵심 요인이다”며 “기업거버넌스 요체는 주주권리 보호, 투명성 제고 및 예측 가능성인데 이번 계획은 창업자 정상수 이사회 의장 입장만 반영되었지 일반주주 이익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 계획은 “쪼개기 상장”에 대해 수차례 경고한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의 자본시장 정책 기조에 맞서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상법개정을 통해 이사회 독립성을 확보하고 투자자 보호가 필요함을 새삼 일깨우는 사례”라고 거듭 꼬집었다.

파마리서치의 지분 1.2%를 소유한 소수주주 머스트자산운용도 파마리서치와 CVC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머스트자산운용은 "파마리서치는 분할되는 두 회사의 신주인수권이 종전의 전체 주주에게 주어지는 인적분할을 택해, 자본시장에서 문제 됐던 물적분할과 다르다는 주장을 펴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인적분할 뒤 현물출자로 모회사·자회사를 모두 상장시키는 지배구조를 계획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신주인수권 관련 차이점이 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중복상장이며 본래 기업가치보다 할인돼 시장에서 거래될 수밖에 없다"며 "애초 지주회사가 필요했다면 100% 자회사로 물적분할을 하고 해당 자회사는 재상장을 안 했으면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맥쿼리증권도 보고서에서 “지배 주주에게만 유리한 불공정한 방안으로서 불공정한 분할 비율로 주주에게 가치 없는 껍데기 주식만 남긴다”며 “회사가 최대 주주인 정상수 이사회 의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사회 9명 중 2명이 정의장 자녀..부적절”
파마리서치는 인적분할 철회에 대해 한국거버넌스포럼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상법 개정의 필요성이 확인된 사례라는 입장을 밝혔다.

포럼은 “회사는 애당초 분할 계획의 취지로 주주가치 제고를 주장했지만, 경영진 생각과정반대로 계획 포기를 발표한 날 시총이 6250억원 늘었다”며 “지배주주 이익이 일반주주 이익과 충돌할 때 상업 개정 이사충실 의무 확대가 아주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고 평가했다.

인적분할 철회 소식이 전해진 당일 파마리서치 주가는 급등했다. 장중 14.70% 급등한 59만3000원까지 상승하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주주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라고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포럼은 “총 9명 이사회 멤버 중 2명은 정 의장의 30대 자녀이고, 사내이사 4명 중 3명은 정씨 일가이다”며 “어린 자식을 상장기업 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주주를 무시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에 대해서는 “작년 10월 파마와 외국PE펀드 CVC캐피탈의 제3자 유상증자 계약 내용과 부속계약을 꼼꼼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며 “작년 CVC 실사 과정에서 회사의 분할 및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시나리오가 논의되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