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포함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시가총액과 상장주식 수에서 자사주를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외에서는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회계기준상 자본 차감이 이뤄지지만, 국내에서는 자사주를 자산으로 인식해 지배주주의 우호 지분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다.

상법 개정안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예외조항과 관련해서는 복지재단과 장학재단, 복지기금 등에 대한 독립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11일 서울 여의도 한경협회관에서 ‘이재명 정부 상법개정안의 핵심 쟁점: 자사주 소각’을 주제로 44차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 자리에서 “자사주는 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주 환원 수단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주주 환원 수단이 아니라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으나 지배주주에 우호적인 기업과 자사주를 맞교환해 서로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법으로 이용돼 왔다”고 덧붙였다.

(사진=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전문가들은 자사주에 대한 국내 시장의 잘못된 인식을 글로벌 기준에 맞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자사주는 배당권도, 의결권도 없기에 유통주식 수나 시가총액에서 빼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며 “국내에서는 주당순이익(EPS) 등 다른 지표 계산에도 자사주가 영향을 미쳐 투자 판단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도 “자사주는 실제 주식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출자자본을 원하는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본질이기에 매입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시총 산정 시 주식 수에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본부장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더라도 소각 전과 사실 달라질 것이 없기에 충분히 실행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국내에서는 수많은 기업이 우호지분 확보를 통한 경영권 안정 및 방어 등을 목적으로 자사주를 제3자에게 처분해 왔다”며 “자사주를 의무 소각하게 하면 자사주 매입 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볼 문제”라고 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9일 대표 발의한 상법개정안은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스톡옵션 지급, 근로복지기본법상 우리사주조합 출연, 공모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권리 행사 등을 위한 자사주 보유는 가능하다.

김규식 비스타글로벌자산운용 변호사는 “자사주 의무 소각 예외 대상에 대한 독립성 확보가 필요하다”면서 “복지재단, 장학재단, 복지기금, 우리사주 등에 자사주가 넘어가게 되면 경영진의 지배력 남용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재단 및 기금의 운용을 외부에 위탁하도록 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전제로 의무 소각 예외조항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자사주를 취득할 때 어떤 회사도 그 목적을 ‘경영권 방어’라고 공시하지 않고 주주가치 제고, 주주환원을 목적으로 내세운다”면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반대하는 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버티기 이슈’”라고 꼬집었다.

그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주 보유 시에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자기주식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주주총회 승인을 받지 못한 자사주는 소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