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드라마, 영화, 게임, 웹툰까지. 이제 K콘텐츠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전 세계인이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보편 문화가 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 콘텐츠 수출액은 약 135억 달러(약 17조 6000억 원)로 자동차 부품, 조선 기자재보다 많아졌다. 콘텐츠가 ‘문화’이자 동시에 ‘먹거리’인 이유다.

그렇기에 이제 K콘텐츠를 더 이상 단순히 K팝, 드라마 같은 흥행 상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를 뒷받침할 전략산업, 국가 브랜드의 결정판으로 봐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가 잘 나간다”는 소식에 들뜬 나머지, 정작 그 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 한 순간에 흔들릴 수 있는지를 깊이 성찰하지 않았다.

사실 K콘텐츠를 키운 것은 대기업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무명의 1인 창작자, 작은 기획사, 독립 제작사들이 숱한 실패를 거듭하며 쌓아온 저력이 오늘의 K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는 너무 크다. 막대한 자본 없이 실험적인 작품을 만드는 소규모 제작사, 해외 수출을 꿈꾸지만 번역·현지화·마케팅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스타트업, 불법 복제와 저작권 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창작자들이야말로 K콘텐츠의 뿌리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돌아가는 보호와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문화커뮤니케이터

중소기업과 약자들을 살려야 K콘텐츠는 계속 숨을 쉰다. 대기업은 이미 스스로 글로벌 판로를 뚫는다. 그러나 수많은 중소 제작사와 신생 기획사, 독립 창작자들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해외 진출 문턱에서 주저앉는다.

정부가 직접 해외 플랫폼과 공동마케팅을 추진하고, 로컬화(자막·더빙·문화 적응) 비용을 지원하며, 해외 바이어와 연결되는 B2B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물론 지금도 하고는 있지만 총체적인 K브랜드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K콘텐츠의 다양성과 지속성이 힘을 받고, 제2의 BTS와 제2의 오징어게임이 탄생한다.

더 나아가 저작권과 지재권 보호도 강화해야 한다. 지금도 한국 웹툰과 예능 포맷은 불법 유통망을 타고 전 세계를 떠돈다. 중소 제작자가 해외 로펌을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재명 정부는 현지 법률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공적 분쟁 대응 기금을 만들어 불법 복제와 싸우는 작은 창작자들의 방패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K를 단순 소비가 아닌 경험으로 만들 문화외교도 중요하다. 해외 한국문화원, 한류 팬덤과 연계한 국제 페스티벌, 글로벌 OTT 공동제작을 늘려 K콘텐츠가 단발적 히트상품이 아닌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되도록 하고, 국격 신장에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세계은행과 글로벌브랜드지수(BBI)는 ‘국가 이미지 1점 상승이 연평균 GDP를 최소 0.5% 끌어올린다’고 분석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진 =넷플릭스 제공]

이제 정부가 나설 차례다. 이재명 정부는 대선 공약에서부터 ‘문화강국, 콘텐츠강국’을 내세운 만큼 더 이상 다음 과제로 미룰순 없다. 구체적 제안으로, 대통령 직속으로 ‘K브랜드위원회’를 설치해 문화·관광·식품·뷰티·IT까지 모든 산업을 K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 관리할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최근까지도 국민주권정부는 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을 늦추며 뭔가 더 잘해보려는 장고(長考)에 빠져 있다. 부디 이런 K콘텐츠와 브랜드 전략을 제대로 꿰고 갈 장관이 오길 바란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문화강국”이란 말이 더 이상 구호로만 남지 않으려면, ‘K’를 브랜드로 묶어 산업과 매출을 함께 키우는 구체적 실행이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 골든타임이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문화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