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특수관계인과 합산해 3%로 제한하는 ‘합산 3% 룰’이 도입된다. 총수 측에 우호적인 비특수관계인 지분이 감사위원 선임의 결정권을 쥘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백기사’로 불리는 우호지분이 공식 특수관계인은 아니지만 총수 일가와 사업적으로 연대하거나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는 주주들인 만큼 이들이 행사하는 표심이 감사위원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명칭 변경 ▲감사위원 선출 시 특수관계인의 의결권까지 합산해 3%로 제한하는 ‘합산 3% 룰’ 도입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상 일정 자산 이상의 상장회사는 감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며 감사위원은 경영진의 위법행위나 부당한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기존에는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각각 3%씩 인정(개별 3% 룰)됐으나, 개정안은 이를 합산 3% 룰로 일원화했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 측이 사실상 감사위원 선임에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대폭 축소된 반면,
비특수관계인 우호지분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번 개정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대표 기업으로는 삼성물산, 고려아연, 한진칼 등이 꼽힌다.
이들은 모두 과거 또는 현재 경영권 분쟁 우려가 제기되거나, 행동주의 펀드의 견제를 받아온 곳들이다.
삼성물산은 2023년 미국·영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들로부터 집중 견제를 받았으며, 자사주 소각 등으로 일시적으로는 갈등이 완화됐다.
하지만 일부 펀드는 여전히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감사위원 선임 국면에서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KCC(10.01%)의 표심이 핵심 변수로 부상할 전망이다.
KCC는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삼성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했으며, 이후에도 ‘비공식 백기사’ 역할을 해왔다.
고려아연도 마찬가지다. 최대주주 측(영풍 및 특수목적법인)의 지분은 37.53%, 최윤범 회장 측은 16.37%를 보유하고 있지만, 개정안 적용 시 이들의 감사위원 선임 의결권은 3%로 제한된다.
반면 고려아연과 사업적 제휴 관계에 있는 한화, 현대차, LG 등 3곳의 지분율은 18%에 달해 캐스팅보트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진칼 역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외 특수관계인 지분(19.96%)과 호반건설 외 2인(18.35%)의 차이가 1%p 남짓으로, 경영권 경쟁이 점화될 수 있는 구조다.
델타항공(14.90%), 산업은행(10.58%) 등이 한진칼의 주요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이들이 호반 측과 손잡을 경우 감사위원 1석 이상 확보가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상법 개정 이후 총수 측의 직접적 영향력은 줄어들지만 KCC, LG화학, 한화, 현대차 등과 같은 우호세력이 실질적인 경영권 방어 또는 감사위 구성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3%룰은 특수관계인 지분까지만 적용되고 우호지분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우호지분이 캐스팅보드로서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