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내 최대 컨테이너 해운사인 HMM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면서, 민주당이 강조하는 해운 클러스터 조성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북극항로가 본격 개통되기 전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해운회사가 미리 들어와야 하고, 직접 지원해 후방산업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고 국내 가장 큰 해운사인 HMM도 부산으로 옮기겠다. 민간 회사이지만 정부 출자 지분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며 "직원들도 동의했다고 한다"고 발언했다.
북극항로는 북극해를 통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항로로 최근 기후 변화로 얼음이 녹아 선박 운항이 가능해졌다. 개통 시 부산항에서 유럽까지 해상 운송 기간이 약 10일 단축될 수 있다.
이 후보의 발언은 부산항을 북극항로 거점으로 삼고, 이를 기반으로 해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지만 해운업계와 물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발상이 현실적 산업 구조와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해운에서 중요한 건 어디에 기항하느냐보다 어디에서 영업을 하느냐”라며 “화주, 해운사, 해운대리점, 포워더, 외국 바이어 등 관계자 대부분은 서울을 선호한다. 각종 회의도 서울에서 진행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 바이어들 역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므로 서울이 동선상 유리하다. 과거 대부분의 해운 관련 회사들이 명동에 밀집해 있었다. 현재는 마포로 많이 이전했는데 그 이유 역시 공항과 가깝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선사들의 본사 입지 전략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머스크(덴마크 코펜하겐), MSC(스위스 제네바), ONE(일본 도쿄) 등 세계 10대 해운사들은 대부분 항만보다는 정책, 금융, 무역 중심지에 본사를 두고 있다. 본사의 역할은 단순 물류 거점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과 전략적 협상이 집중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구교훈 회장 또한 "HMM이 하는 일 중 선박금융의 업무 비중도 큰데 금융 네트워크가 모두 서울에 밀집해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경제 파급 효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구교훈 회장은 “일반 기업들은 법인세를 통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지만, 해운사는 톤세 제도를 적용받는다. 이는 법인세의 1/10 수준이다"며 실질적 지방 재정 기여는 크지 않다고 꼬집었다.
북극항로 개통과 관련한 지리적 이점 역시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부산과 인천은 수백km 거리 차이가 나더라도 운임은 동일하다. 결국 어느 항을 택하느냐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달라지며, 부산항이 기항 조건상 불리할 경우 오히려 기피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본사 이전이 직원 이탈과 조직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지난해 말 기준 HMM 전체 직원은 1824명이다. 이중 1058명인 육상직이 대부분 서울에서 근무 중이다.
이 후보는 “직원들도 동의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HMM 관계자는 “육상노조와 해상노조 모두 민주당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바 없으며, 직원들에게 이전 동의를 구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