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히는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한 데 이어 소액주주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상법 개정이 추가로 추진되는 것이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전날 기업이 취득한 자기주식(자사주)을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발족한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들이 자사주를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고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회사의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하고,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꼽힌다.

다만, 개정안은 예외적으로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보유를 허용하도록 했다. 이 경우에도 정기 주주총회의 승인을 반드시 받도록 했다. 이 때 대주주의 의결권은 발행주식 총수의 3%로 제한된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은 9일 기업이 취득한 자기주식(자사주)을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진=김남근TV]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자사주 소각의 제도화를 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민주당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자사주 의무 소각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지배주주 지배력 강화 ‘자사주 마법’ 악용
당초 국내에서 자사주 취득은 자본충실 원칙에 따라 금지돼 왔다.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하거나 소각할 목적이 아니면 취득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2011년 경영권 방어라는 재계 요구와 글로벌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회사법 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사주 취득을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소각 의무는 폐지했다.

이후 자사주가 지배구조 왜곡 수단으로 악용돼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면서 제도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김남근 의원은 “국제적으로는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과 배당권, 신주배정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인 기준이나 한국에서는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해 신주배정을 허용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지배주주 지배력을 부당하게 확대하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사주를 제3자에게 매각할 때 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우호 세력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기존 주주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법안 발의 이유를 설명했다.

해외에서도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사례들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회사법에서는 자사주를 ‘발행되지 않는 주식’으로 간주해 사실상 소각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또 독일은 자사주 보유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경우 3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 신주 발행이나 자기주식 처분에 모두 주주의 우선권이 인정되진 않지만, 주주의 구제수단을 마련해 자기주식이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돼 지배권 강화에 활용되는 것은 방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 비율 10% 초과 상장사 216개…올해 자사주 소각 30조 달할 듯
국내 상장사 중 자사주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기업은 216개에 달하고, 40%를 넘는 기업도 4곳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은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5월 20일까지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사가 공시한 자사주 소각 결정 금액 합계는 12조3923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전체 소각 결정 금액인 13조2981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2022년 3조1350억원, 2023년 5조4003억원에 불과하던 자사주 소각 규모는 지난해 13조원 대로 2년만에 4배 이상 뛰었다.

올해는 5개월여만에 지난해에 거의 육박하는 결정이 이뤄져 연간으로는 30조원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고 신규 매입 시에는 3개월 내에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지배주주나 경영진이 자사주를 악용하는 게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가시화하면서 증권사들은 자사주 보유 비중 뿐만 아니라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 여부와 부채비율, 순현금 등을 함께 고려해 투자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건영 KB증권 연구원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지주회사는 경영권 방어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음에 따라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보유할 유인이 낮다”며 “부채비율이 낮고 순현금을 보유한 지주회사는 자사주를 자금 비축의 형태로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