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이 60년 남은 청년과 20년 남짓 남은 고령자 중, 누구에게 더 많은 정치적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할까.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평등을 대원칙으로 삼지만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선 이 원칙이 때로는 세대 간 불균형을 고착시키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국회는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에 도달했다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럽다. 기금 고갈 시점을 고작 9년 늦추는 데 그쳤고 청년층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했다. 현재 20대~30대가 은퇴할 시점에는 기금이 거의 바닥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은 왜 청년층의 미래를 외면하는 걸까? 이유는 단순하다. 유권자 구성 때문이다. 현재 전체 유권자의 절반가량이 50대 이상이며, 이들의 투표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자연히 정치권은 이들의 표심을 최우선에 두고, 청년층의 요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번 연금 개혁안도 그런 구조 속에서 탄생했다. ‘1인 1표’ 원칙에 따라 형식적 평등은 지켰을지 몰라도, 실질적 형평은 무너진 셈이다.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모습[사진=국회 제공]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은 이미 해외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젊은 층은 EU 잔류를, 고령층은 탈퇴를 지지했다.
그 결과 미래를 살아갈 세대의 의사와는 반대로 국가의 진로가 결정되었다. 당시 영국 언론에서는 ‘잔여 기대수명에 따라 투표에 가중치를 두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예컨대 20세는 5표, 60세는 2표, 80세는 1표를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실제 법제화되진 않았지만 미래세대의 정치적 대표성이 무시되는 현실에 대한 경고였다.
이런 시나리오는 한국에서도 반복될 것이다. 기득권 세대가 구조를 고치지 않는 이상, 청년 세대는 점점 더 불리한 조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국민연금처럼 후속 세대의 부담 위에 세운 ‘세대간 폰지게임’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눈치 빠른 미래 청년들은 더욱더 빠른 속도로 한국을 떠날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더욱 빠른 속도로 가라앉을 것이고 연금 고갈 속도도 그만큼 가속화된다. 저출산이 우려된다고 입을 모아온 정치인들이 어떻게 저출산을 가속화하고 있는지 이번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과연 지금의 투표 시스템은 다음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는가?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연금은 고갈되며 청년은 미래를 비관하는데 정치는 여전히 중장년층의 이해만을 좇고 있다.
옆나라 일본을 보자. 우리보다 18년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현실이 어떤지. 청년들은 희망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우리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
물론 연령별 투표 가중치는 현행 헌법상 도입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유권자의 절반이 50대 이상인 상황에서 개헌도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럼에도 아예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번 국민연금 개혁안처럼 세대 간 이해가 충돌하는 이슈일수록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할 때 연령별 대표성을 고려한 비례 인원 구성이 필요하다. 청년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고 미래에도 유지가 가능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경한 아이디어가 정치권에서 논의되기를 바란다. 물론 지금으로선, 기후위기 해결보다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