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충실 의무 두고 "두렵다" vs "공평한 책임"

8개 경제단체 “상법개정안, 경영권 위협 우려”
거버넌스포럼 "법의 구멍을 막기 위한 첫 단추"

김선엽 승인 2024.06.26 18:12 의견 0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방안을 담은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경제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현행 상법 282조 3항에 따르면 기업의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다고 돼 있다.

정부는 개정안을 통해 ‘주주의 비례적 이익’를 위해야 한다는 규정을 넣을 계획이다. 특정한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릴 경우 손해를 본 다른 주주가 이사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사진=김선엽 기자]

경제계는 경영진을 상대로 남소가 유발되고 기업 활동이 위축되며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4일 국내 경제단체 8곳은 상법 개정 계획에 반대하는 공동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건의서에 이름을 올린 곳은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해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다.

현행 상법은 이사가 회사와 위임 계약을 맺고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의무를 수행하는데, 개정안은 이사와 주주 사이에 계약과 위임은 없는데 대리인 관계만 형성되는 법리적 문제가 발생해 법 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제단체들은 주장했다.

또한 행동주의 펀드가 한국 기업에 대한 공세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들은 “한국은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같은 세계적으로 활용되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 실정”이라며 “상법 개정이 행동주의에 유리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일부 주주들이나 글로벌 행동주의펀드 등이 충실 의무 위반을 빌미로 이사를 배임죄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커질 것을 가장 우려했다. 사법 리스크가 증가함에 따라, 경영진이 각종 소송에 시달릴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해 신속·과감한 판단을 주저하면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본 조달, 인수합병(M&A) 등 경영상의 판단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예컨대 미래 사업을 위한 신주 발행이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킨다는 이유로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결정’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마치 ‘지배주주가 곧 회사’이니 다른 주주는 그저 따르라는 주장으로 들린다"라며 "상장으로 일반주주들로부터 거액의 자본을 조달할 때는 각종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을 상장회사들일텐데, 일반주주의 이익을 더도 아니고 지배주주와 같은 정도로 공평하게 보호할 의무나 책임은 왜 부담하지 않으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포럼은 또 "주주 전체에 대한 충실의무는, 모든 주주가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이라고 꼬집었다.

포럼은 아울러 "규제에 실패한 법의 구멍을 막기 위한 기초로 주주 충실의무가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정상화의 첫 단추"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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