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칼럼] 15년 간 재산을 4445배 불린 SK 회장님

1994년 주당 8원에 산 주식이 2009년 3만5650원
계열사 주주에게 돌아갔어야 할 이익이 총수에게 집중
"수탈한 주주돈 가지고 누가 더 기여했는지 싸우는 재판"

김선엽 승인 2024.06.18 13:29 | 최종 수정 2024.06.18 14:31 의견 0

지난 17일 최태원 SK 회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혼 소송 판결에 계산상 치명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자의 눈길을 끈 대목은 다른 부분이었다.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가 15년 사이에 무려 4445배나 뛴 점이다. 최 회장은 1994년 11월 아버지로부터 2억8000만원을 증여받았는데 이 돈으로 산 대한텔레콤 주식(현 SK)의 가치가 2009년에 1조2500억원이 됐다. 두 번의 액면분할과 합병 등을 거치면서 주당 8원에 산 주식이 3만5650원이 된 것이다. 15년간 연 75%의 수익률을 기록한 셈이니 워렌버핏도 울고갈 대단한 투자 귀재라 할 수 있다.

혹자는 그 기간 동안 SK그룹이 크게 성장하면서 지분 가치도 함께 늘어난 것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과연 그럴까.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995년 선경그룹(현 SK그룹)의 자산가치는 12조8060억원이었다. 이게 2009년에는 86조원이 된다. 그룹 자산이 6.3배 커지는 동안 최 회장의 지분은 444,400%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다.

지난 17일 최태원 SK 회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혼 소송 판결에 계산상 치명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SK 제공>

이 돈은 어디서 온 것일까 궁금하겠지만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비상장 계열사를 만들어서 그 지분의 상당부분을 자녀에게 증여하고 그 회사에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는 일은 우리 재벌가에서 흔한 일이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횡횡했다. 주로 이용되는 회사는 전산시스템통합(SI) 업체다. 보안을 이유로 그룹 전체의 일감을 몰아줘도 공정위의 칼날을 피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SK그룹에서는 SK C&C(구 대한텔레콤)가 이런 역할을 했다.

그룹 전체가 최 회장 일가의 개인회사에 가까운 SK C&C를 키우기 위해 애쓴 셈이다. 그렇게 해서 커진 SK C&C는 2009년 상장을 했고 15년 전에 2억8000만원이던 최 회장의 지분 가치는 1조2500억원이 됐다. 결론적으로 계열사 주주들에게 돌아갔어야 할 돈이 지배주주에게 집중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ESG 화법을 빌리자면 종업원과 하청업체, 그리고 소비자와 지역사회에게 돌아갔어야 할 이익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15년 SK C&C는 SK와 합병한다. 합병 비율은 합병 다시 양사 주가에 따라 기계적으로 결정되는데 당시 최태원 회장은 SK C&C 지분 32.9%를 갖고 있었으나 SK㈜ 보유 지분은 0.02%에 불과했다. SK C&C 주가가 높고 SK㈜ 주가가 낮을수록 최 회장에게 유리했다.

상장 당시와 비교해 합병 무렵 SK C&C 주가는 7.5배 올랐고 같은 기간 SK 주가는 3배 정도 상승하는데 그쳤다. 오죽하면 '샤이'한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내놨을까.

반전은 합병 이후 펼쳐진다. 합병 직후 30만원이던 SK㈜ 주가는 9년이 지난 지금 17만원이다. 2015년 152조원이던 SK그룹의 자산 총액은 2024년 334조원이다. 그룹 외형은 2배 이상 커졌지만 지주사 시총은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왜일까. SK㈜ 주가가 오를수록 상속세가 늘어나고 최 회장 일가에게는 못 마땅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이처럼 주주를 배신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룹 각 계열사 이사회가 지배주주에게 이익이 되고 일반주주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기 때문이다.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 총수의 입맛에 맞는 거수기 노릇만 해 왔다. 남양유업 심혜섭 감사는 자신의 SNS에 "수탈한 주주돈을 가지고 누가 더 기여했는지를 놓고 싸운 게 이번 (이혼) 재판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치는 쪽에서 상법을 개정해 이사회의 책임을 강화하자고 한다. 하지만 정작 최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대한상의는 상법 개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국장'은 쳐다보지도 말자는 개인 투자자들의 분노가 이해된다. 주주자본주의도 안 지켜지는 나라에서 ESG를 운운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진다.

최태원 SK 회장 측이 18일 발표한 보도자료 중 일부<자료=S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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