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칼럼] 최고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밸류업, 왜 자꾸 다른 무기를 달라고 하나

주주충실의무 입법 급물살에 슬그머니 끼워넣기
경영권 안정과 낮은 주가, 두 토끼를 다 잡고 싶나

주주칼럼 승인 2024.06.27 11:11 의견 0

최근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상법 개정, 즉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슬그머니 경영권 방어 수단에 대한 요구도 다시 머리를 들고 있다. 일반주주에게 좋은 것을 하나 추가하려면 지배주주에게 좋은 것도 하나 추가하라는 기계적 교환의 관점에서 나오는 주장으로 보이는데, 사실 별다른 논리적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하는 것은 상당한 지분율을 가진 대주주 사이에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과 별 상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포이즌 필 도입이나 차등의결권 적용 확대를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이렇다. 현재 우리나라 상장회사의 지배주주 지분율은 20~30% 정도로 높지 않아서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 그렇에도 불구하고 외국에는 다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이 우리나라에는 없어서, 회사들이 불가피하게 회사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서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 이런 현상 때문에 자본 효율성이 낮아지고 연구 개발이나 사업 확장에 자본이 투입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한 논리이지만, 큰 오류 두 개가 있다. 하나는, 공금인 회사 돈으로 매입하는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라는 사적 목적을 위해 쓰는 것을 너무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사 구분이 되지 않는 이 논의는 자사주에 관해서 너무 많이 해 왔으니 여기에서는 더 이야기하지 말기로 하자. 지금 이야기할 문제는 두 번째, 위 주장이 더 근본적으로 인위적인 ‘경영권 방어’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기관 투자자든 개인 투자자든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든 그 주식이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상식적인 얘기다. 어떤 주식을 많이 살 수록 ‘싸다’는 생각에 확신이 강한 사람일 것이다. 경영 참여가 가능한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려는 투자자는 보통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생각한다. ‘내가 하면 더 비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반대로 말하면 현재의 경영진이 경영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주들 간의 경쟁은 매우 건강하며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 자본시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즉, 주식이 싸지 않으면(즉, 기업의 본질적 가치보다 시장에서의 가치가 낮지 않으면)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그 회사의 주식을, 그것도 경영에 참여할 수준의 많은 지분을 살 이유는 전혀 없다. 적정하거나 고평가되고 있는 주식을 굳이 사서 가격을 더 올리려고 할 투자자는 드물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에는 본질적 가치보다 저평가되어 있는 주식들이 차고 넘친다. 따라서 주식의 가격이 오르고 기업의 본질 가치를 잘 반영하면 할 수록 그 회사의 경영권에 도전하는 다른 주주는 적어진다. 경영 열심히 하고 일반주주 환원 열심히 하면 지배주주의 경영권이 확고해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왜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이즌필(기존 주주들에게만 아주 낮은 가격으로 신주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나 차등의결권(일부 주주들에게만 1주당 10개와 같이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것)과 같은 인위적이고 주주평등에도 정면으로 반대되는 경영권 방어 수단을 계속 원하는 것일까?

경영권 안정과 낮은 주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배주주는 보통 주가 상승에 대한 동기가 일반주주와 다르다. 일반주주는 지분율보다 주가 상승을 원하지만, 경영에 대한 영향력이 중요한 지배주주는 주가보다는 지분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20~30% 정도의 상대적으로 낮은 지분율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지배주주라면 한 주가 아까울 수 있다.

‘밸류업 대신 경영권 방어 수단을 달라’는 주장은 사실 모순이다. 진정으로 밸류업하면 경영권 방어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경영권 방어 수단을 구하기보다는, 일반주주 보호와 주주 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밸류업도 달성하고 경영권도 안정시키며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도 도모하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지배주주들이 늘어나길 기원해 본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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