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발표할 예정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앞두고 외국인 자금이 꾸준히 한국 자본시장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개인들은 오랜만의 상승장에서 열심히 '익절'에 나서고 있다. 외국인과 개인이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내놓을 프로그램을 개인들은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듯싶다. 왜일까.
한 달 전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부터 다소 불안불안했다.
구독자 300만명의 경제 유튜브 ‘슈카월드’ 운영자인 ‘슈카’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주주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대주주는 주가가 너무 올라가면 상속세를 어마어마하게 물게 된다. 거기다 할증세까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속세율 완화를 시사했다. 물론 우리나라 상속세가 과도하다는데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이중과세 소지도 크다. 상속세 인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기여할 것이란 주장에 필자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상속세 인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마지막 단추다. 그 전에 매듭지을 문제가 여러 개다.
대표적으로 ▲상법 개정을 통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규정 ▲쪼개기 중복 상장 금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이다. 이러한 소액주주 보호 정책이 마련돼야 상속세 인하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물론 법 전문가인 윤 대통령이 이런 부분을 도외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워낙 상속세 인하에 많은 발언 시간을 소진하다 보니 과연 어떤 결론이 날지 의구심이 여전한 듯 보인다.
더군다나 정부가 최근 내놓고 있는 정책들도 소액주주 보호가 아니라 대주주 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인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자사주의 마법'을 막겠다며 인적분할 시 신주 배정 금지를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복 상장 금지는 없던 일이 됐다. 자사주 강제 소각안도 결국 채택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오히려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 양자 모두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제도다.
이러한 경영권 보호제도를 허용하면 회사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불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이유가 없어 주주환원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주장도 곁들어진다. 한 마디로 장밋빛 시나리오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왜 생겼는가. 경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을 잘못하거나 주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경영자는 언제든지 교체될 가능성이 열려야 한다. 그래야 경영진은 경영에 매진하고 주주환원에도 적극적이다. 그래야 한국 주식의 저평가는 해소된다.
그런데 정부는 오히려 최대주주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정확히 반대로 가고 있다.
경쟁이 없으면 발전은 없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2도 안 되는 주식들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발에 채게 넘쳐나는 것은 그 회사의 경영권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이다. 소위 ‘깽판을 쳐도’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경영권을 강화한다고 하니 개미들이 떠날 만도 하다.
상속세가 낮아졌다고 주주환원이 자동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경영권이 강화됐다고 배당이 늘어날 리 만무하다. 주주환원은 오너의 시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행동주의 펀드 관계자는 "안 그래도 상속세를 절반으로 깎아주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기업 오너들에게 물어봤는데, 줄어든 건 줄어든 거고, 그렇다고 상속세를 절세할 유인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란 답변이 돌아왔다"고 전했다.
관료의 치밀한 기획으로 저PBR이 해소되지 않는다. 경영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보장될 때 기업의 가치는 올라가고 주주환원도 저절로 늘어난다. 지금과 같이 기업의 팔을 비틀어 배당을 강제하면 잠시는 주가가 반짝할지 몰라도 궁극적 해법이 될 수 없다.
증권사 한 임원은 "한국 자본시장이 수십 년간 왜곡된 상태에서 이미 안정적 균형을 찾은 것 같다. 무슨 정책을 내놔도 이 균형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정부가 의욕을 갖고 접근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흘려듣는 거 아니겠는가"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해외 IB의 관심이 이례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곧 발표될 밸류업 프로그램이 글로벌 투자기관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반대로 후폭풍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한국 자본시장의 명운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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