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칼럼] 이선균 협박녀의 머그샷을 공개하자고요?

법적 처벌 넘어선 망신주기는 전근대적 야만행위
언론과 경찰 탓하지만 대중의 수요가 있기에 공급
알권리로 포장된 집단 관음증, 계속 꺼내들 것인가

주주칼럼 승인 2024.01.04 10:12 | 최종 수정 2024.01.04 20:42 의견 0

다리 위에 부뚜막을 만들고, 큰 가마솥을 설치해 물을 붓고 아궁이에는 불을 땔 수 있도록 장작을 놓은 후 죄인을 가마솥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탐관오리 죄인을 가마솥에 넣는다. 여기까지는 다른 문화권의 팽형(烹刑)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장작불을 지피는 시늉만 하고 실제로 불을 붙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솥에 들어갔다 나온 죄인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식구들은 실제로 죄인의 장례를 치르고, 호적이나 족보에도 망인으로 기록된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탐관오리에 대해 실제 목숨을 빼앗기보다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 평생 수치심을 주고, 명예를 최대한 실추시키는 처벌을 집행했다고 한다. 팽형을 당한 죄인은 수치심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전해진다.

배우 故 이선균이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많은 국민들이 먹먹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배우 故 이선균씨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 가운데 이씨 사건의 전말이 이제서야 경찰을 통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그가 정말 마약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됐다.

범죄자의 말만 덜컥 믿고 이씨를 공개소환 한 경찰에 십자포화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경찰이 흘린 정보, 그것도 범죄사실과 직접 관계도 없는 녹취록을 9시 뉴스에 보도한 방송사 역시 어떤 식으로든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씨 협박범의 얼굴을 공개한 유튜버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찬사를 보고 있노라면 이 지긋지긋한 조리돌림이 언제야 끝날 것인지 아득하다.

버젓이 피의사실공표죄가 있음에도 유명인의 범죄 혐의를 경찰이 브리핑하거나 뒤로 흘리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은 이를 문제삼기보다는 오히려 경쟁적으로 여과없이 보도해 왔다.

그리고 대다수 시민도 무비판적으로 이를 소비했다. 앞선 KBS 보도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이씨의 죽음 이전까지 찾을 수 없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기꺼이 불법정보를 소비하고 조리돌림을 일삼던 이들이 이제 와서 '왜 이런 정보를 공급했냐'고 따지는 모습은 씁쓸하다. 그러면서 이제는 가해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씨 사건으로 잠시 정부와 언론기관의 불법정보 공급이 주춤하겠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분노를 유발했다는 이유만으로 검경과 언론, 유튜버들은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에 피의자의 신상과 범죄사실을 유포해 대중의 욕망에 기생하려 할 것이다. 그 욕망의 정체는 알권리로 포장된 관음증이고 정의구현이란 황당무계한 사적제재다.

법치국가는 오로지 법에 의한 처벌만을 인정한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불충분하다면 법을 고쳐야지 마녀사냥으로 해결할 게 아니다. 우리는 그의 유무죄를 단죄할 능력을 신으로부터 부여 받지 못 했고 '망신주기'는 우리 법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씨 사건은 특별하지 않냐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터졌을 때도 해당 학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일반시민 뿐 아니라 교육 종사자 사이에서도 쏟아졌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몰카 범죄와 관련해 지난 2018년 한 국무회의에서 “수사가 되면 해당 직장이라든지 소속기관에 즉각 통보해서 가해를 가한 것 이상의 불이익이 가해자에게 반드시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노의 여론이 거세면 전직 인권 변호사고 교사고 이런 과오를 범한다.

혹시나 아직도 "왜 범죄자 편을 드냐"며 성을 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는 어떤 범죄까지 신상을 공개할 것인가. 살인? 강간? 절도? 어떤 범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포기하고 조리돌림을 허용할 것인지 시민사회가 결정해야 한다. 얼마나 야만으로 갈 것인지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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