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칼럼] 언제까지 지배주주 간 '백기사놀이' 허용할 것인가

2024년 기업 거버넌스 개혁의 첫 발은 자사주 제도 개선
백기사에게 자사주 매각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동일
주주가치 훼손하는 자사주, 글로벌 스탠다드로 규제해야

주주칼럼 승인 2023.12.29 09:51 | 최종 수정 2023.12.29 09:55 의견 0

2023년 정부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릴레이 세미나를 수차례 열었다. 세미나 등을 거친후 부분적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자사주 제도 개선 등 자본시장의 거버넌스를 개선할 수 있는 여러가지 안들이 도출되었다. 정부가 발표한 초안이 완벽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기존 제도 대비 진일보한 방향이었다. 이러한 제도 개선안이 연내에 발표될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2023년을 이틀 앞둔 지금까지 개선안 발표는 없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초안이 발표되었지만, 자사주 제도는 아직 초안조차 나오지 않았다.

재계에서 자사주 제도의 개선을 반대한다고 한다. 이유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백기사에 대한 자사주 매각 또는 상호 교환이 유일한 경영권 방어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상장기업의 대주주 평균 지분율은 약 40%다. 실질적으로 경영권 분쟁이 불가능한 기업이 대다수다.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기업이 대다수다.

자사주의 매입은 유상감자와 실질이 동일한 주주환원이다. 자사주의 처분(매각)은 반대로 유상증자와 실질이 같다. 주식을 발행하는 것과 동일한 행위다. 우리 상법에서는 주주 보호를 위해 제3자 배정 증자를 할 때는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발행가격에 대한 규제도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동일한 행위인 자사주를 제3자에게 처분할 때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도 백기사에게 자사주를 자유롭게 매각한다. 현실이 이렇기 때문에 자사주를 매입해도 소각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제3자에게 매각될 수 있기 때문에 주가는 대개 내재가치의 증가분만큼 오르지 않는다.

한국의 자사주 운영 현실과 제도, 그리고 법원 판례는 글로벌 스탠다드 또는 회계기준, 상식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러한 제도와 현실이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자본이 차감되기 때문에 매입한 자사주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인데, 법원 판례는 반대로 취득한 자사주를 자산으로 간주하여 자유롭게 처분하는 행위를 문제 삼지 않는다.

소각하지 않은 자사주가 전체 발행주식의 절반 이상인 상장사도 있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기업을 보면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사주가 제3자에게 매각되어 다시 출회될 가능성을 생각한다. 각종 국내 시장데이터 제공업체들도 시가총액을 계산할 때 자사주를 포함하여 계산한다. 그러나 블룸버그와 같은 해외 데이터 업체들은 자사주를 제외하고 시가총액을 계산하여 보여준다.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이기 때문이다. 같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국내 업체와 해외 업체에 다르게 표시되는 이유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제도는 하루 빨리 상식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2024년에는 자사주 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될지 기대와 함께 동시에 우려도 된다. 과거 상법 개정 시 자사주에 대한 규제 역시 도입될 뻔 한 적이 있으나, 재계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한다. 내년에는 시장참여자들의 기대와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게 자사주 제도가 개선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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