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칼럼] 뉴욕에서 만난 기업지배구조의 글로벌 스탠다드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장치, 점차 축소 추세
의결권 자문사 반대 입장 분명...주총 통과 어려워
韓 비중 줄이는 외인 투자자, 지배구조 개혁 주목

주주칼럼 승인 2023.10.19 09:49 | 최종 수정 2023.10.19 10:28 의견 0

필자는 현재 미국 뉴욕 출장 중이다. 지금 뉴욕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으로 인해 둘로 갈라져 있다. 컬럼비아대학은 학생들의 시위로 인해 캠퍼스를 잠시 폐쇄했으며, 뉴욕대학 앞에서는 양측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가 진행됐다.

양 측의 주장과 간극은 쉽게 좁혀지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무고한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일 것이다.

미국 뉴욕대 앞에서 수백 명의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친 이스라엘 시위대가 깃발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서로 대치하고 있다. [사진=김형균 칼럼리스트]

필자는 뉴욕에서 여러 투자 회사들과 한국과 미국의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 자본시장에 존재하는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입장의 간극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최근 정부 주도로 의무공개매수, 자사주 매입, 처분 등과 관련한 소수주주 보호 정책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데, 행동주의 펀드 등 투자자들은 이를 환영하는 반면, 재계에서는 미국의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가 한국에는 없으니 자사주를 백기사에 처분하여 경영권을 보호하는 제도와 관행 등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도 재계와 소수주주 및 투자업계 간의 의견과 입장의 간극을 놓고 어떤 제도를 도입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소수주주의 1주와 지배주주의 1주는 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원칙은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탱하는 보편적인 가치로서 지켜져야 한다.

과연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러한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반문해 보면, 자사주를 다루는 법과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개정해야 하는지,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뉴욕에서 만난 투자자들과 법조인들은 미국의 포이즌필에 대해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해줬다. 미국에서는 현재 포이즌필을 도입하고 있는 기업의 수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사의 시차임기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뉴욕 월가 전경 [사진=김형균 칼럼리스트]

포이즌필 또는 시차임기제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 또는 도입하려는 기업은 주주총회에서 대부분의 주주로부터 찬성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관투자자 중심의 시장인 미국에서는 이들의 표심을 좌우하는 ISS나 글래스루이스와 같은 의결권자문사들의 입장이 매우 중요한데, 이들 자문사들은 포이즌필이나 시차임기제 도입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과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거나 도입하려는 기업들은 대부분의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폐지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를 도입하려 하는 경영진은 주주들로부터 해임되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은 경쟁이다. 경영권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 없이 보호받는 경영권을 통해, 50%의 지분으로 100%의 권리를 행사하면서 소수주주가 보유한 1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지배주주는 기업의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 기관투자자들과 의결권자문사들은 이러한 핵심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선진 자본시장과 반대 방향으로 경영권 보호 수단 도입을 언급하기 전에, 모든 1주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자본시장의 대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자가 뉴욕에서 만난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은 한국이 진정성 있는 지배구조 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 한국 시장에 수십년간 투자해 오던 펀드들의 상당수가 최근 수년간 한국 비중을 크게 줄여왔다고 한다.

모든 답은 지배구조에 있다. 이들이 다시 한국 시장에 돌아와 한국 자본시장과 경제 발전에 함께 기여하게 하려면 우리 스스로 글로벌 스탠다드와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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