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알쏭달쏭한 이름의 등기이사가 몇몇 기업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기타비상무이사다. 경영진에 해당하는 사내이사와 회사 바깥 사람인 사외이사의 중간적 위치다. 지주사 임원이 종종 계열사 비상무이사로 선임돼 그룹과 계열사간 의사소통 채널을 담당한다.
총수의 최측근이 왕왕 임명된다는 점에서 주요 기업 기타비상무이사를 보면 그룹의 실세와 주력 기업 향방이 드러난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총 30위 내 기업 중 11개 기업에서 비상무이사를 뒀다.
비상무이사는 사내이사·사외이사와 마찬가지로 등기이사의 하나로 이사회 멤버다.
사내이사가 통상 CEO나 CFO 등 경영진이라면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최대주주로부터 독립해 회사의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감시한다.
기타비상무이사는 기업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외이사와 지위가 같지만, 경영진이나 최대주주와의 관계에서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사내이사 성격을 가진다. 2009년 상법 개정과 함께 도입됐다.
사외이사의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가 있거나 관계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경우 선임될 수 없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기타비상무이사가 이용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상장사의 이사로 선임된 1867명 중 85명이 기타비상무이사다.
우선 타 회사의 유능한 경영진을 이사회 멤버로 영입할 때 활용된다. 상법은 상장기업 외 2개 이상의 다른 회사에서 등기임원을 맡고 있으면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비상무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인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이 좋은 예다.
변 회장은 벤처 1세대로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뒤를 이어 2017년부터 한성숙 대표이사와 함께 네이버의 성장을 견인했다.
엔씨소프트 비상무이사인 박병무 VIG파트너스 대표 역시 같은 케이스다. 2007년부터 박 대표는 엔씨소프트 이사회에 몸을 담고 있는데 그는 1세대 토종 사모펀드(PEF)인 보고펀드(현 VIG파트너스)의 공동대표 출신으로 인수·합병(M&A) 분야에서 굵직한 레코드를 써 왔다.
양 사간 파트너십 관계가 있는 경우 한쪽 임원이 다른 기업의 기타비상무이사를 맡는 경우도 있다.
신한금융지주 필립 에이브릴 기타비상임이사는 신한금융그룹과 19년간 동행한 BNP파리바의 일본 대표를 역임했다.
지주사 체제에서는 그룹의 경영 방침을 계열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다.
주주가 법인인 경우 그 법인의 이사, 감사 및 근로자인 경우 상법상 사외이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LG그룹 2인자인 권영수 LG 부회장은 현재 LG화학, LG전자, LG유플러스의 기타비상무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3개 기업의 비상무이사로서 이사회 의장은 물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까지 겸직 중이다. 그에게 집중된 권한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LG생활건강 하범종 기타비상무이사 역시 지주사 LG의 사내이사이자 LG생건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유정준 SK E&S 부회장이 2017년부터 기타비상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유 부회장은 최태원 SK 회장이 1998년 직접 발탁한 인물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최 회장의 아들인 최인근씨가 SK E&S 전략기획팀에서 근무 중이기도 하다.
SK텔레콤 유일한 비상무이사는 조대식 SK SUPEX 추구협의회 의장이다. 조 의장은 최태원 SK 회장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그룹 2인자다.
반대로 자회사 대표가 모회사 비상임이사로 이사회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KB국민은행 허인 행장과 하나은행 박성호 행장은 각각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비상무이사다. 둘 사람 모두 차기 금융그룹 회장 후보에서 앞서 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최종학 경영대 교수는 "기타비상무이사는 완전 독립적인 사외이사는 아니지만 회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보통 기타비상무이사로 경영에 참여한다"며 "즉 경영에 조언을 주기 위해서 임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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