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전체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명시하는 상법 개정안이 공포와 함께 즉시 시행되었다. 이사는 회사 뿐만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일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의 이익을 해치는 결정을 하면 안된다.
그 전주에는 삼성물산 부당합병에 관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형사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있었다. 대체로 예상한 바와 같이 무죄 확정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이 판결은 결코 그러한 행위가 다시 일어나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재용 회장은 법정 최후진술에서 “합병 추진을 보고받고 두 회사의 미래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주주에 피해를 입힌다거나 투자자들을 속인다든가 하는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물론 두 회사의 미래에 모두 도움이 되는 합병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합병비율에 따라 그 중 한 회사의 주주들에게는 더 도움이 되고 다른 한 회사의 주주들에게는 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게 이익충돌 거래다. 그리고 양 쪽을 다 결정할 권한이 있다면 누구나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조건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 양심의 문제가 아니다.
원고와 피고를 모두 대리하게 된 변호사가 양쪽 모두 양심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패소한 판결 결과에 불만을 가진 한 쪽 당사자에게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최후진술은 이재용 회장 자신이 이익충돌 관계에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두 회사의 합병 결정에 모두 관여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자백과 같았다.
‘구체적인 노력이나 의도와 관계 없이 이익충돌 관계의 양 쪽 결정을 한 사람이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쌍방대리와 이익충돌 문제 해결의 기본이다. 공사 구별이 확실한 사회일 수록 이런 이익충돌 문제에 엄격하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그런 개념이 한참 부족하다.
그리고 이런 미묘한 이익과 손해의 문제를 흑백을 나누고 선악을 가르는 형사 법리가 해결할 수는 없다. 10년을 끈 이재용 회장에 대한 형사 사건은 주주간 이익충돌 문제 해결을 위해 형사 처벌이 적절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전날인 7월 16일, 삼성에 대한 커다란 의문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물론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 문제가 수면 위로 크게 드러났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날, 회계기준원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관련 유배당보험의 회계처리에 대해 강한 우려와 함께 원칙적 회계기준 강제를 단언했다. 이 논란은 보험과 회계라는 생소한 이슈여서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어렵지 않다.
삼성생명은 30년도 더 전에 보험료를 좀 더 내면 그 돈으로 주식을 사고 팔아서 이익이 나면 배당을 준다고 약속하고 보험을 팔았다. 이게 ‘유배당보험’이다. 그리고 이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샀는데 이제 주가가 엄청나게 올라서 수 십조 원 규모가 되었다.
그런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도 않고 보험 가입자들에게 배당을 주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줄 돈’을 회계상 ‘부채’로 잡지도 않고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안 팔 주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고 한다.
팔아서 배당 주겠다고 하면서 산 주식을 이제는 안 팔 거라고 하면서 배당도 주지 않는 단순한 사건이다. 그게 회계 문제가 되어 ‘부채’냐 아니냐는 논란이 된 것뿐이다.
말을 바꾸고, 보험 계약자들의 피해를 계속 묵인하고, 국제적인 회계 기준까지 예외를 적용 받으려는 이런 이율배반적 상황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삼성에 대한 커다란 사건이 끝나자 새로운 거대한 사건이 시작되는 것일까?
하지만 법적 공방이 다시 벌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형사 판결이 잘 보여주듯, 법은 단순한 흑백의 선을 그을 뿐 바람직한 길을 알려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삼성화재에 대한 지분법 적용이나 유배당보험계약에 대한 회계상 부채 처리 문제는 말단에 드러난 지엽적인 쟁점일 뿐, 삼성생명이 그 주주들은 물론 수많은 보험계약자의 피해와 국제 회계기준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예외의 예외를 적용 받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가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 유지에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다. 상법 제382조의3은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할 의무’를 이사에게 부과했다. 하지만 지배력의 문제는 지배력 하에 있는 계열회사나 그 이사들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이재용 회장이 결단해야 할 이유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