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와 국회가 상법개정안 통과에 속도를 높이는 가운데, 파마리서치와 엘티씨 등 상법개정 이전에 중복상장을 진행시키는 코스닥 기업 사례가 늘고 있다. 대주주 상속세 절감이나 재무적투자자(FI) 엑시트와 같은 일부 투자자를 위한 중복상장이라는 의혹을 받는다. 일각에서는 거래소도 이슈가 되는 기업 외의 중복상장은 눈감아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닥 기업 파마리서치의 이사회는 지난 13일 회사를 지주사 파마리서치홀딩스(가칭)와 사업회사 파마리서치(가칭)로 인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분할기일은 오는 11월 1일이며 분할비율은 분할존속회사 파마리서치홀딩스 0.7427944, 분할신설회사 파마리서치 0.2572056다.
분할 이후 파마리서치홀딩스는 변경상장되고, 파마리서치는 오는 12월 10일 코스닥 시장에 재상장될 예정이다.
파마리서치는 공시를 통해 “지주사는 자회사, 피투자회사 관리 및 신규 투자 등 투자사업부문에, 분할신설회사는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 제조 및 판매사업에 각각 집중함으로써 사업 특성에 맞는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배구조 체제를 확립하고 투자위험과 경영위험의 분산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이어 “분할 절차 및 재상장 완료 후 일정한 시점에 분할신설회사인 파마리서치 지분에 대하여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파마리서치의 지주사·사업회사 중복상장 예고에 주주들은 반대 목소리를 낸다.
파마리서치 지분 1%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자 머스트자산운용은 “회사는 인적분할 절차가 끝난 이후 현물출자를 통해 모회사(상장)-자회사(상장) 구조의 지배구조를 계획하고 있다”며 “중복상장 문제는 한국 자본시장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주제 중 하나다. 지주회사 형태의 운영이 필요하다면, 100% 자회사로 물적분할하고 그 자회사는 재상장을 안 하는 약속과 함께 관련된 규정을 두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속세를 절감하는 등 오너일가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의혹도 나온다.
머스트자산운용은 “모회사의 대주주 지분율은 (현재 지분인) 약 30%에서 크게 증가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 분할이 전체주주를 위한 결정인지 아니면 대주주만을 위한 결정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심혜섭 변호사는 “지주사 주가는 폭락할 것이다. 오너일가는 지주사 지분만 가지고 (사업회사를 간접지배할 생각이니) 지주사의 낮은 주가에 맞춰 상속세를 책정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은 “공시를 통해 노골적으로 ‘사업회사 지분에 대한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진행해 (사업회사를) 자회사로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분명 어떤 행동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업회사 파마리서치 지분에 대하여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진행한다는 의미는, 지주사인 파마리서치홀딩스가 새로운 주식을 발행해(유상증자) 공개매수에 응하는 사업회사 파마리서치 주주의 주식을 새로 발행한 파마리서치홀딩스 주식과 교환한다(현물출다)는 뜻이다.
파마리서치 대주주 일가 역시 분할비율에 따라 파마리서치홀딩스 주식과 파마리서치 주식을 받게 되는데, 분할 이후 파마리서치홀딩스가 파마리서치 지분에 대하여 공개매수 방식의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진행하면, 대주주 일가는 분할 때 받은 파마리서치 지분을 파마리서치홀딩스 지분과 교환해 지주사 지분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사업회사는 지주사의 자회사가 되므로 지주사 지분만 가지고 사업회사를 간접 지배할 수 있는 구조도 구축할 수 있다.
상장사의 경우 회사의 자산이 아닌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상속세가 매겨진다. 시총이 낮은 회사의 주주일수록 주식을 상속할 때 적은 상속세를 낼 수 있다.
파마리서치의 최대주주는 지난 3월 말 기준 지분율 30.48%의 정상수 이사회 의장이다. 파마리서치는 앞서 정 의장의 장녀인 정유진을 사내이사로 선임한 데 이어, 지난 3월 주총에서 정 의장의 장남 정래승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이와 관련 1959년생인 정 의장의 나이를 고려해 승계작업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코스닥 상장사 엘티씨도 중복상장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엘티씨의 자회사 엘에스이는 지난 2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상장예비심사 신청서를 접수했다.
엘에스이는 엘티씨에 지난 2022년 인수된 알짜 자회사다. 지난해 기준 엘에스이의 매출액은 1969억원으로 모회사 엘티씨의 연결 기준 매출액(2770억원)의 71%를 차지했다.
엘티씨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회사는 이번 상법개정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는 결정을 내렸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종목의 주가가 회복되는 가운데 엘티씨는 중복상장 우려로 주가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는 대선이 있던 지난 3일 직전일인 2일에 자회사 엘에스이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했다. 상법개정이 되더라도 소급적용 받지 않으려고 꼼수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엘에스이를 인수할 때 투자한 재무적투자자들(FI)을 엑시트 시키기 위해 엘에스이 상장을 추진하는 것으로 추측된다”며 “일부 투자자를 위해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로 정부 지침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코스닥 상장사 중에는 거래소에서 중복상장을 승인받은 경우가 꽤 있다”며 “거래소도 이슈가 되는 회사만 보여주기식으로 중복상장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거래소는 지난해 2월 밸류업 프로그램 계획을 발표한 이후인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모자회사 중복상장 신청 19건 가운데 14건의 상장심사를 승인해 줬다.
한편, <주주경제신문>은 엘티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