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들을 시장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국내 철강기업 다수가 저평가 기업군으로 지목받고 있다. 철강업계는 구조적인 저평가 요인을 인정하면서도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통해 기업가치 재평가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PBR이 0.1이면 이론적으로 10배 장사를 하는 셈인데, M&A를 하든 청산을 하든 정리해야 한다"며 "일정 수준을 밑도는 상장사는 시장 질서를 해치는 존재"라고 발언했다.

PBR은 기업의 BPS(순자산)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PBR이 1 미만이면, 이론적으로는 기업을 현재 시가로 전부 인수해 청산할 경우 주주가 자산가치를 초과해 돌려받을 수 있다.

국내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PBR 1 미만 기업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점이 지적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PBR 1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본은 정책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부터 PBR 1 미만 기업에 '밸류업 전략' 제출을 권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많은 일본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에 나섰다. 일부 기업은 PBR이 0.4배에서 0.9배로 회복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PBR이 0.1~0.2배에 머무는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거래정지 종목을 제외하고 54개사에 달한다. 이 중 동국홀딩스, 동국씨엠, 대한제강, 동일제강, 세아홀딩스, 영풍, 현대제철, 영흥 등 주요 철강기업이 포함됐다.

실제로 지난해 매출 기준 상위 10대 철강기업 중 고려아연을 제외한 9개 기업들이 PBR 1 미만을 기록했다.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으로 주가가 급등한 바 있다.

자료 : 업계 종합

철강업계는 자산은 많지만 주가는 낮은 구조적 디스카운트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경기 민감도가 높은 사이클 산업이라는 점이다. 철강기업의 실적은 글로벌 경기, 철광석·원료탄 가격, 중국의 수급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

이익이 증가할 때는 높은 ROE(자기자본이익률)를 기록하지만, 불황기에는 빠르게 적자로 전환되기도 한다. 예컨대 2021년 철강업 호황기에는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이 각각 13.97%, 8.54%의 ROE를 기록했으나, 2023년에는 각각 2%, -0.06%로 급락했다.

기업이 자본을 얼마나 잘 활용해 이익을 나타내는지를 나타내는 ROE가 높을수록 PBR도 높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철강업은 공장, 설비, 토지 등 고정자산 비중이 높아 장부상 자기자본은 크지만 실제로는 유동성이 낮다. 시장은 이를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으로 간주하며 보수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세아홀딩스, 동국홀딩스처럼 지주사 구조를 가진 철강기업들은 지주사 디스카운트까지 반영된다. 지주사는 자회사 배당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지만, 실적과 주가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시장 반응이 미약하다.

주요 철강기업들은 저평가 탈출의 해법으로 주주환원 강화를 택했다. 업계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을 통해 투자자 신뢰를 높이고,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미국 전기로 제철소에서 기존 고로 제품 품질 수준에 준하는 탄소저감 자동차강판을 생산함으로써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수익·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재편하고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해 수익성 개선에 집중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동국홀딩스 관계자는 "시황 악화 및 관세 등 대외적 요인으로 저평가 된 상황이라 중간배당 및 적자배당 기준 마련, 선배당액 확정 후투자, 사업회사 지분 매입 등으로 그룹사 주가 부양을 위해 노력중이다"고 말했다.

세아홀딩스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기업가치제고(밸류업) 계획을 공시했다"며 "기존사업 경쟁력 강화 및 신사업 확장을 통한 수익성 강화 및 다양한 주주환원 정책을 시행해 PBR을 0.5배까지 늘릴 계획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