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 경영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변화다. 이번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기업 경영진이 주주의 요구를 보다 직접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란 측면에서 분명 환영할 만하다. <주주경제신문> 역시 그 동안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다만, 충분한 숙의 없이 조문이 완성되다보니 자칫하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고 불확실성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만약 개정된 상법이 제대로 보완되지 않는다면, 제2의 중대재해법처럼 기업 운영에 큰 부담을 주는 법안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대형로펌 회사법 전문 변호사는 "우리 분야에서는 이번 상법 개정안이 중대재해법만큼 영향력이 있다고 본다"며 "사내이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외이사는 어마어마한 소송리스크를 감안할 때 누구도 섣불리 맡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보완책을 제시한다.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확히

미국 델라웨어 법원이 지속적으로 적용해온 ‘경영판단의 원칙’은 이사의 의사결정이 합리적인 정보에 기반하고, 선의로 이뤄졌다면 사법적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기업 경영진이 일정한 재량권을 가지면서도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으로 인해 이사의 의사결정이 주주들에게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경영진이 소송 리스크를 우려해 적극적인 투자나 전략적 의사결정을 회피할 가능성이 커졌다. 따라서, 개정된 상법 하에서도 ‘경영판단의 원칙’이 명확히 적용될 수 있도록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

법원은 기업 경영진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린 합리적 판단에 대해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정립해야 한다.

'임원책임배상보험'의 확대 필요

상법 개정으로 인해 이사들의 법적 책임이 확대되면서, 기업 경영진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도 증가했다. 특히,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무가 명문화됨에 따라, 경영진이 예상치 못한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임원책임배상보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는 경영진이 업무 수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법적 책임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으로, 글로벌 기업에서는 이미 필수적으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도 상법 개정 이후 경영진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기업들이 임원책임배상보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를 법적 보호 장치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회사 정관에 이사의 판단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

상법 개정으로 인해 이사의 의사결정 기준이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기업이 자율적으로 이사의 판단 원칙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회사 정관(Articles of Incorporation)에 이사의 판단 기준과 경영 원칙을 명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관에 이사가 회사의 지속 가능성과 장기적 성장 전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며, 특정 주주의 단기적 이익을 위한 의사결정이 기업 전체의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항은 이사들이 합리적인 경영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며, 불필요한 소송을 방지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회사 이사회가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배임죄 폐지'를 통한 경영 리스크 완화

한국 기업 경영진이 가장 우려하는 법적 리스크 중 하나가 바로 ‘배임죄’다. 현행법에서는 이사가 경영상 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을 일부 침해했다고 해도, 사후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배임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기업 경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모든 의사결정이 반드시 성공할 수는 없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경영진이 의도적으로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은 이상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이는 ‘경영판단의 원칙’을 존중하고, 경영진이 합리적인 재량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주주경제신문>은 이에 배임죄를 폐지할 것을 줄곧 요구했다.

따라서 배임죄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경제적 의사결정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이유로 경영진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기업이 법적 리스크를 지나치게 우려해 소극적인 경영을 하지 않도록 법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앞선 변호사는 "경영판단의 원칙은 당연히 적용되겠지만 과실이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라며 "충분하고 객관적인 검토를 했다는 것을 이사가 입증해야 되는데 쉽지 않을 부분"이라고 말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글로벌 환경에 걸맞는 상법을 갖추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요구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역시 1500만 주식투자자의 목소리를 한칼에 무시하기보다는 보완책 마련에 집중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