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을 두고 여당과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한국경제인협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어 경영권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이 주주를 성가신 존재로 여긴다면 애초에 왜 상장을 한 것인가.

이번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이사들이 배임죄 소송 위협에 시달려 정상적인 경영 판단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주주의 돈을 투자받아 성장하는 구조라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가 포함되는 것이 마땅하다.

지난해 10월 김준만(왼쪽부터) 코스닥협회 본부장, 정우용 상장회사협의회 부회장, 이인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본부장이 기업 지배구조 규제 강화 법안이 다수 발의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사진=한국경제인협회 제공]

외국에선 너무도 당연한 상식인데 한국에서는 법원에 의해 배척됐다. 그러니 굳이 사족에 가까운 이러한 법 조항을 만들자는 것이 자본시장 종사자들의 목소리다.

현재 한국의 많은 기업은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서도 주주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데 인색하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 유지를 위해 상장 기업을 사적 소유물처럼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업의 경영진이 진정으로 기업의 미래를 위한다면,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권익 보호가 필수적이다.

미국 기업이 혁신적인 이유는 단순히 '기업가 정신' 때문만이 아니다. 주주들의 감시와 투명한 지배구조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명확한 주주환원 정책과 강력한 거버넌스 덕분이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주주를 경영의 걸림돌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대한상의가 최근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한국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을 선호하는 이유로 '기업의 혁신성과 수익성'뿐만 아니라 '활발한 주주환원'과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를 꼽았다. 이는 한국 시장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재계는 이번 상법 개정안이 "행동주의 펀드의 먹잇감이 되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지나친 과장이다. 미국에서도 행동주의 펀드들은 기업 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며, 무조건적인 경영 개입이 아닌 합리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멀쩡한 기업이 오로직 행동주의 펀드 때문에 문을 닫는 경우는 보지 못 했다. 행동주의 펀드건, 그를 지지하는 또 다른 투자자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기업가치의 회복과 그에 따른 투자 수익률 제고다. 자신이 투자한 기업이 망하도록 만들겠다는 펀드 매니저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과거 엘리엇이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과도한 주주환원을 요구했던 사례를 들어 행동주의 펀드의 폐해를 강조하지만, 이는 결국 다른 투자자의 동의를 얻지 못 해 통과되지 않았다.

주주도 싫고 행동주의 펀드의 견제도 싫다면 방법은 2가지 뿐이다. 상장 기업을 상폐시키거나 주식시장 개방을 철회하는 것이다.

2025년에 조선 말 쇄국정책을 펼치겠다는 이들에게 과연 우리 기업의 미래를 맡겨도 되는지 염려스럽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투명한 지배구조와 주주와의 신뢰 회복이 필수적이다. 재계가 진정 경영권 보호를 원한다면, 주주에게 '1불 1표'의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국민의힘 역시 수권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자본시장을 업그레이드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