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지난 24일 발표한 ‘한-미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는 흥미롭지만, 이를 해석하는 방식은 꽤나 편향적이다.

대한상의는 국민들이 미국 자본시장을 선호하는 주된 이유를 ‘기업의 혁신성과 수익성’ 때문이라고 강조하며, 국내 자본시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 아닌 ‘혁신성 촉진’과 ‘세제 인센티브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설문조사 결과를 다시 살펴보면, 미국 투자 선호 이유로 ‘기업의 혁신성과 수익성’이 27.2%로 가장 많았지만, ‘활발한 주주환원’(21.3%)과 ‘투명한 기업지배구조’(14.8%) 또한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특히 주주환원과 지배구조를 합하면 36.1%로, 기업의 혁신성과 수익성(27.2%)보다도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를 단순히 ‘혁신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조사 결과를 왜곡하는 것이다.

한-미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보고서 중

그러면서 대한상의는 마치 기업 지배구조 규제가 기업 성장과 주주가치 상승을 방해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이 지속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명확한 주주환원 정책과 투명한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또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 기업이 혁신적인 이유도 지배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 자본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경영자들은 혁신을 통해 경영성과를 내지 못 하면 자리를 유지하지 못 한다. CEO들이 끝없이 혁신을 도모하는 이유다.

반면 한국 기업에서는 주주자본주의 원리가 정확히 관철되지 않는다. 상당수의 CEO가 오로지 오너에게만 잘 보이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오너에게 잘 보인다는 것이 곧 기업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슬프게도 우리 기업 지배구조하에서는 시총 증가가 오너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닌 경우가 흔하다.

예를 들면, 일부 대기업들은 시가총액을 키우기보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데 더 집중한다. 그 결과물이 순환출자,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 중복상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50년 넘게 기업의 이러한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감시했지만 많은 경우 기업에게 선수를 뺏기곤 했다.

더 이상 공정위 시스템으로 수많은 기업을 기계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국내 주식투자자라면 공감할 것이다.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강화 등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이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이유다.

대한상의의 주장은 ‘지배구조 문제를 덮고 가자’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국내 증시의 가치를 높이려면 지배구조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 기업들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대한상의는 아전인수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지 말고 재계의 대표답게 우리 기업이 맞닥뜨린 문제에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