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지수 구성종목 100종목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형주부터 코스닥 주식까지 다양한 섹터에서 100종목이 선정됐다.
그러나 발표 직후 업계의 반응은 혹평에 가까웠다. 한 외국계 증권사는 “100종목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표현했으며, 또 다른 외국계 증권사는 밸류업이 아니라 밸류다운 지수라고 혹평했다.
주주환원을 잘 하고 있고 더 잘 하겠다고 천명한 일부 은행주들이 빠져 있고, 그룹 구조개편에서 희생양이 된 것으로 시장에서 판단하고 있는 두산밥캣 같은 회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주주환원을 거의 안 하고 장기간 주가가 하락하여 주주가치를 훼손해온 게임사나 엄청나게 고평가된 반도체 기업 등이 포함되었다.
거래소가 발표한 지수 산정 방식을 보면, 시가총액 상위 400위, 최근 2년 연속 또는 합산 적자가 아닌 기업, 최근 2년 연속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을 실시한 기업, PBR 순위가 전체 또는 산업군 50% 이내인 기업, ROE가 우수한 기업 등이 기준이며,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 중 일부도 포함되었다.
지수에는 코스피 지수와 같이 그 자체로 시장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수에 기반한 펀드, ETF 등의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다. 따라서 투자했을 때 오를 것 같은 지수만이 시장성을 가질 수 있다.
시장이나 섹터를 대표하는 지수는 그 자체로 시장 전체 또는 섹터 전체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투자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지만, 밸류업 지수처럼 소위 커스터마이즈된 지수는 상품성을 가지려면 선정 기준을 잘 설정하여 유망한 구성종목들이 선정되어야 한다.
주가는 미래의 실적이나 주주이익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른다. 따라서, 상품성을 가지는 지수는 앞으로 주주이익이 개선될 수 있는 종목으로 구성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밸류업 지수의 선정 기준을 보면 이미 시총이 높은 기업, 이미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 이미 주주환원을 하고 있는 기업, 이미 PBR이나 ROE가 높은 기업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즉 밸류업 될 기업들보다는 이미 밸류업 된 기업들이 선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수가 자체적으로 가지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미래에 잘 될 기업들을 선정하는 것은 펀드매니저가 정량, 정성적 분석을 거쳐서 해도 실패할 정도로 어려운 일인데, 단순히 과거의 데이터만 가지고 이런 기업들을 선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거래소가 정량적이지 않은 판단 기준을 가지고 종목을 선정한다면 각종 로비도 있을 수 있고 선정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다만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정량화된 툴로 보여준 기업들로 지수를 구성할 수 있다. 이번 지수에 특례요건으로 포함된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들이 ‘의지’를 보여주는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들이 10여개 사 정도밖에 없어서 100종목으로 지수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번에 발표된 방식으로 지수가 구성되면, 오히려 주목받아야 될 앞으로 좋아질 주식들은 소외되고 이미 고평가되었거나 주주가치 제고 의지가 없는 주식들에 수급이 몰려, 시장에 거품이 커지고 효율성이 낮아져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
패시브 투자 규모가 오래전부터 커진 미국에서는 패시브 투자가 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많은 논쟁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밸류업 지수가 성공하려면, 우선 밸류업 공시를 하는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그래서 지수 구성종목 연간 심사 시에 이러한 종목들이 많이 편입되어야 한다. 밸류업 공시는 의무사항이 아니라 자율이기 때문에 결국 기업, 즉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 실효성 있는 밸류업 공시를 할 의지가 있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게, 즉 경영진이 기업가치와 전체 주주가치를 높이려고 노력하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에 대한 상법 개정을 포함하여 많은 입법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이 밸류업 지수의 성공을 위해, 궁극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해소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 김형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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