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본시장의 가장 큰 화두는 누가 뭐래도 두산그룹의 구조개편일 것이다.
지난 칼럼(http://s-econ.kr/View.aspx?No=3305388)에서 밝혔듯이 두산의 구조개편은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두산이 분할합병 등 구조개편을 이행하려면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수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금감원은 7월 24일에 이어 이달 26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두산로보틱스에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한 간담회에서 두산로보틱스의 증권신고서에 대해 부족하다면 횟수 제한 없이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26일에는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두산로보틱스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에 대한 설명 보도자료까지 냈다. 두산그룹의 구조개편 관련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 및 내용(구조개편 논의 시점, 검토 내역, 진행 과정, 거래시점 결정 경위, 구체적인 시너지 효과 등), 그리고 두산밥캣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부문의 수익가치 산정 근거(현금흐름할인, 배당할인 모형 등과 기준시가 사용 결과의 비교 등)를 보완하도록 요구하였다는 내용이다.
금감원은 합병비율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신고서에 중요사항이 충실히 기재되도록 정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금감원은 이러한 권한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금감원은 합병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할 때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를 통해 합병비율 변경을 유도한 적이 있다. 삼광글라스가 이테크건설, 군장에너지와 합병할 때 삼광글라스의 주주들에게 합병비율이 현저히 불리하자 두 차례에 걸쳐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를 했고, 결국 회사는 한 차례 합병가액 할증을 거쳐 최종적으로 시가 대신 자산가치(관계기업의 가치가 반영된 연결재무제표 상 자산가치가 아니라 관계기업이 원가로 기록된 별도재무제표 기준을 사용하여 반쪽짜리지만 의미가 있었다.)를 사용하는 것으로 합병가액을 변경한 바 있다.
현재 자본시장법에서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금감원이 요구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현행 법 하에서 주주들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안을 간접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두산로보틱스에 대한 금감원의 정정 요구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구조개편 논의 시점과 검토 내역, 진행 과정을 밝히라고 했다. 이는 이번 구조개편이 두산로보틱스의 이사회가 충분한 기간동안 타당성과 주주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하고 진행한 것인지, 검토 없이 두산그룹으로부터 구조개편 지시를 하달 받고 졸속으로 이행한 것인지 살펴보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후자라면 증권신고서에 그 내용을 사실대로 밝히고 싶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허위로 조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래시점 결정 경위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즉, 수많은 시기 중에 딱 이 시점을 골라서 분할합병 등 구조개편을 하기로 결정한 경위를 밝히라는 것이다. 두산밥캣이 주가가 내재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상당히 고평가된 것으로 보이는 현재 시점에 합병 등을 하는 경위와 근거를 밝히라는 것으로, 총수일가에 유리한 시점을 정한 것이라면 이 역시 밝히기 힘들 것이다. 시점을 논의한 이메일 등 근거가 있다면 이를 거짓으로 증권신고서에 기재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시너지 효과를 요구했는데, 이는 단순히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만 하지 말고 시너지 효과를 구체적인 숫자로 계산했는지 여부와 그 결과를 밝히라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에서는 합병을 할 때 구체적인 숫자를 통해 추산한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주주들이 그것을 보고 판단을 해야 하는데, 과연 두산그룹이 그런 숫자를 계산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산밥캣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부문의 수익가치 산정 근거를 보완하도록 요구했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기 위해, 기존 두산그룹 구조개편안이 어떤 방식으로 결정됐는지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건은 아주 단순화해서 보면, 저평가된 두산밥캣과 초고평가된 두산로보틱스의 시가 기준 합병이나 다름없다. 표면적으로는 두산에너빌리티의 분할신설법인은 비상장이므로 본질가치로, 두산로보틱스는 상장사이므로 시가로 합병가액을 정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은 밥캣 지분과 부채를 가진 껍데기에 불과하므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 모두 두산밥캣 시총 x 지분율에서 부채를 차감하여 구했다. (안진회계법인이 평가) 그래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가 숫자가 거의 비슷하다. 본질가치라는 외피지만 실질은 두산밥캣 시가인 것이다. 즉, 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의 자산인 두산밥캣의 본질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단순히 시가를 적용하여 합병가액을 정했다.
금감원이 요구한 두산에너빌리티 분할신설부문의 수익가치 산정 근거는 바로 이 내용과 관련 있다. 분할신설부문의 수익가치를 평가할 때 단순히 두산밥캣 지분가치를 사용하는데 그치지 말고 현금흐름할인이나 배당할인 모형 등 본질가치 평가법을 사용하여 수익가치를 도출했는지 여부와 그 결과를 밝히라는 것이다. 즉, 분할신설법인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했는지, 아니면 지배주주 등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저평가된 두산밥캣의 시가를 단순히 사용하는데 그쳤는지 밝히라는 의미가 있다. 기존에 제출한 평가의견서를 보면 두산이 이러한 과정을 거친 것 같지는 않다.
살펴보았듯, 금감원의 이번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는 두산그룹 구조개편 의사결정 과정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결정을 한 것인지 증명하라는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내용을 정정요구하였는지 공개되지 않지만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그 내용을 밝힌 것은 의미가 크다.
과연 두산그룹은 금감원이 정정요구한 모든 내용을 밝힐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분할합병 등을 위한 주주총회가 9월 25일로 예정되어 있다. 주주총회 소집통지는 2주 전인 9월 10일까지(9월 11일 아닌 10일이다) 해야 한다. 그리고 증권신고서는 최종 제출 후 정정요구를 받지 않고 7영업일이 지난 후에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8월 29일, 즉 오늘까지 증권신고서를 정정해야 9월 10일자로 효력이 발생하며 그 날 주총 소집통지를 해서 9월 25일에 주총을 열 수 있다.
금감원이 26일에 요구한 많은 내용을 두산로보틱스가 과연 오늘까지 정정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오늘까지 정정을 못하거나, 정정을 하더라도 내용이 미흡하여 금감원이 다시 정정을 요구한다면 예정된 주주총회는 연기될 수밖에 없다. 두산그룹이 주주가치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그러한 절차를 거쳤는지 금감원이 강하게 물었고 이제 두산이 답할 차례다. 금감원 뿐만 아니라 시장도 두산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 김형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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