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돈 먹는 하마를 집어 삼킨 SK그룹
SK온의 자금 수혈 위해 SK E&S와의 합병 마무리
80~90년대 선단경영의 부활...그룹 리스크 커져
대마불사 인식이 재계 전반에 확대될지 걱정된다
주주시론
승인
2024.08.29 11:36 | 최종 수정 2024.08.29 14:24
의견
0
SK그룹 에너지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안이 양사 임시 주주총회를 통과하면서 9분 능선을 넘었다. 11월 1일이면 자산 105조 원 규모의 합병법인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된다.
이 합병은 표면적으로는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친환경 에너지 사업과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결합을 통한 미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계열사 SK온에게 현금흐름이 좋은 SK E&S의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함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SK온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큰 성장을 이루고 있으나, 막대한 투자와 운영 비용으로 인해 여전히 '돈 먹는 하마'로 불린다. 배터리 사업은 미래의 핵심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현재의 기술적 한계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높은 원자재 비용으로 인해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
실제로 SK온은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도, 아직까지는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SK E&S와의 합병은 불가피했던 측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SK가 선택과 집중을 하지 못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합병으로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 역시 SK온의 리스크를 일정 부분 부담하게 되면서 그룹 전체의 재정적 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이처럼 SK그룹의 이번 합병 결정은 과거 한국 대기업들이 선호했던 '선단경영'의 부활을 연상시킨다. 선단경영은 여러 계열사가 하나의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움직이며, 한 계열사의 문제가 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여러 대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기업들은 이후 선단경영을 지양하고, 계열사 간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SK그룹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위기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할 수 있다. 잘못하다간 국가대표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까지 외국인에게 내주게 될지 모른다는 아찔한 상상까지 든다.
이번 합병이 우려되는 또 다른 이유는 '대마불사' 경영 방식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대마불사란, 너무 크고 중요한 기업은 실패할 수 없다는 논리로, 정부나 금융권이 위기에 처한 대기업을 구조조정이나 공적 자금을 통해 지원하는 관행을 의미한다. 이는 시장의 자율적 조정 기능을 저해하고,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게다가 다른 대기업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려 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됐다. 이러한 경향은 기업들의 혁신 동기를 저해하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합병으로 돈을 그냥 한 주머니에 합쳐버리는 모양새가 됐다"며 "IMF 전에는 서로 돈 빌려주고 사주고 그렇게들 했다가 IMF를 겪으면서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지주사 형태로 전환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98년 외환위기 때처럼) 시장에 쇼크가 온 후에야 정부가 나서서 빅딜 치고 그러는 방식은 이제 우리 경제가 지나간 거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기업들은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지속 가능한 경영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주주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