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수 피한 SK...두산 합병비율, 다시 도마 위로

SK이노-SK E&S 합병비율 1대 1.19
지분율 높은 SK E&S 합병가액 욕심 버려
두산그룹과 다른 행보 주목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 1주당 0.63주 교환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매출 180배

김나경 승인 2024.07.18 18:01 의견 0
(사진=SK이노베이션)

SK그룹이 합병을 앞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기업가치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했다. 합병존속회사에 대한 지주사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지주사 지분율이 높은 SK E&S의 기업가치를 고평가할 것이란 업계의 예상을 깬 것이다.

비슷한 시기 지주사 지분 확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주식교환비율을 제시한 두산그룹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전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양 사 합병안을 의결했다. SK이노베이션이 SK E&S를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소멸회사인 SK E&S 주주는 합병 비율에 따라 SK이노베이션 합병 신주를 발행받는다.

업계 예상을 깨고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가액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졌다.

SK이노베이션 합병 가액은 최근 주식 거래 종가와 거래량 등을 산술평균한 기준시가인 11만2396원으로 정해졌다. SK E&S 합병 가액은 2023년 말 별도재무상태표를 기준으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각각 1과 1.5의 비율로 가중산술평균한 13만3947원으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비율은 1 대 1.1917417이다. 합병 후 SK의 SK이노베이션 예상 지분율은 55.9% 수준이다.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가액 및 그 산출근거. (사진=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앞서 업계에서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이 1 대 2 이상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봤다. 지주사 SK의 지분이 절대적인 SK E&S 합병가액을 높여 합병존속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서 SK의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기준 SK의 SK이노베이션과 SK E&S 지분율은 각각 36.2%, 90.0%다.

비상장사인 SK E&S는 기업가치 기준을 순자산, 순손익, 매매사례가액 등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지난 2021년 11월 발행한 상환전환 우선주(RCPS)를 보통주 2주로 전환한 가치는 29만3091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했다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대 2.6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이 경우 합병존속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서 SK 지분율은 단순계산하여 72.0% 이상이다.

물론 SK이노베이션 주주로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상장사는 기준시가가 자산가치보다 낮은 경우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자산가치는 기준시가의 2배 이상인 24만5405원이다.

두 회사 모두 자산가치를 기준으로 통일하여 합병가액을 정하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비율은 1 대 0.33까지 벌어질 수 있다. 기존 SK이노베이션 주주가 합병 존속회사에서 최대한 지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다.

SK그룹 입장에서는 지주사와 SK이노베이션 주주가 한 발씩 양보한 합병비율을 제시한 셈이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은 18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합병비율과 관련해 “양사가 가진 수익력과 미래 성장 분야를 고려하면 적정수준이라고 판단했다”며 “(향후 주가는) 합병 시너지를 내느냐, (이를) 시장에 증명하느냐에 달렸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보면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산그룹 인적분할합병 및 포괄적 주식교환 절차. (사진=두산밥캣)

이는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한 두산그룹과 대비된다.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을 합병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방식이 참 복잡하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 지분을 깔끔하게 공개매수하는 것이 아닌, 회사를 쪼개고 주식을 이리저리 교환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두산그룹은 두산밥캣의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를 인적분할해 새로운 법인을 만들고, 여기로 두산밥캣을 귀속시킨 후 분할법인을 두산로보틱스에 흡수 합병시켜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넘기기로 했다.

이후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된 두산밥캣과 포괄적주식교환을 실시하고, 두산밥캣을 상장폐지시킨 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할 계획이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두산그룹은 별다른 자금 조달 없이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3배나 높일 수 있으나, 기존 두산밥캣 주주는 알짜기업 주식을 불리한 주식교환비율이 적용된 아주 적은 양의 테마주 주식으로 교환당한다는 것이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으로 지주사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유효 지배력은 기존 14%에서 42%로 확대된다.

하지만 두산밥캣 주주는 두산밥캣 주식 1주를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17462주로 교환 받는데 그친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교환가액은 최근 주가를 바탕으로 한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각각 5만612원, 8만114원으로 정해졌다. 합병비율은 1 대 0.6317462주다.

두산밥캣은 두산그룹 내 최고의 캐시카우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두산로보틱스의 180배 수준인 9조8000억원이다.

그러나 상장사는 이런 부분을 모두 차치하고 주가만을 기준으로 교환비율을 정해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상장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고 로봇 테마에 묶여 주가가 고공행진 중인 두산로보틱스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분할합병 비율과 주식교환 비율의 적정성을 논외로 하더라도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이사회가 선택한 지배권 이전 방식(분할 합병과 포괄적 주식교환)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서 “두 회사의 이사회가 (이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일반 주주 이익보다 그룹의 이익을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논평에서 “지난해 말 상장한 두산로보틱스는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는 테마주 성격이 강하고 지난해 매출 대비 시가총액 (PSR)이 100배가 넘는 초고평가 상태로 아직 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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