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두산그룹이 사업구조 개편을 발표했다. 인적분할합병, 포괄적 주식교환을 수반하는 매우 큰 구조개편으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재 ㈜두산이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부문과 두산밥캣을 보유한 신설법인으로 인적분할한다. 그리고 그 신설법인을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한다.
그리고 두산로보틱스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두산밥캣 일반주주들의 지분을 두산로보틱스 주식으로 교환해주고 두산밥캣을 100% 자회사한다.
금주 정정공시된 내용에 따르면, 이후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을 합병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두산 아래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과 합병한 두산로보틱스가 존재하는 구조가 된다.
복잡해 보이지만 아주 쉽게 요약하면, 두산에너빌리티 밑에 있던 두산밥캣을 떼어내서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구조다.
이러한 합병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은 첫째, 두산밥캣 주주에서 합병법인 두산로보틱스 주주로 지위가 바뀌는 현재의 두산밥캣 주주, 둘째, 두산밥캣을 간접 보유하고 있다가 두산로보틱스로 밥캣을 빼앗기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셋째, 두산로보틱스 주주, 넷째, 두산의 일반주주, 다섯째, 두산그룹의 지배주주다.
각각의 입장에서 유불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두산밥캣 주주: 그룹의 저평가된 캐시카우 기업 주주에서 초고평가된 로보틱스 주주로 지위가 바뀐다. 내재가치 대비 싼 밥캣 주식을 내어주고 비싼 로보틱스 주식을 받거나, 또는 원하지 않으면 현재 주가 수준에서 현금을 받고 나가야 한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우량기업 밥캣을 간접보유하고 있다가 로보틱스에 빼앗기지만, 인적분할합병 과정에서 분할비율만큼 로보틱스 주식을 받는다. 따라서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도 밥캣 주식을 내어주고 로보틱스 주식을 일부 받는 구조다. 비율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두산밥캣 주주와 유사한 입장에 처해 있다.
두산로보틱스 주주: 비싼 로보틱스 주식을 발행해서 싼 밥캣 주식을 인수하는 구조이므로, 이익이다.
㈜두산의 일반주주: 큰 틀에서 밥캣 주주의 부가 로보틱스 주주에게로 이전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두산밥캣의 실질 지분율이 13.8%, 두산로보틱스 지분율이 68%인 두산의 주주 입장에서는 이익이다.
두산그룹의 지배주주: 마찬가지로 지배력이 낮은 밥캣의 가치를 지배력이 높은 로보틱스로 이전한 셈이기 때문에, 두산그룹의 지배주주 입장에서도 이익이다. 특히, 구조개편으로 두산의 캐시카우 밥캣에 대한 실질지배력도 13.8%에서 42%로 증가한다.
결국 두산밥캣의 일반주주가 가장 큰 손해를, 두산에너빌리티의 일반주주가 그 다음의 손해를 보고, 두산그룹 지배주주와 두산로보틱스 주주, 두산 주주들이 이익을 보는 구조다.
일부는 밥캣 주주한테도 보유한 밥캣 주식의 시장가치(주가)만큼의 로보틱스 주식으로 바꿔주는데 밥캣 주주가 왜 손해인지 묻는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렇게 비유하면 될 것이다.
급매로 실제 가치 10억원보다 싸게 나온 아파트를 5억원에 한 채 샀는데, 갑자기 정부에서 아파트를 강제로 5억원어치 잡코인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나는 10억짜리 가치를 가진 물건을 5억원에 싸게 사서 10억원에 팔아서 5억원을 남기려는 아이디어로 투자를 했는데, 갑자기 그걸 엄청나게 가격이 올라 있는 원하지도 않는 잡코인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당장 내일 가격이 1억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코인으로 말이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건 재산권의 침해와 마찬가지다. 이렇게 주주의 재산권 침해하지 말라고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회사의 이사들이다. 이익을 보는 다른 회사 이사들은 몰라도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이사들은 이러한 거래를 수용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대기업의 구조개편 과정에서 각 회사의 이사들이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했을 리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애초에 이런 문제가 왜 생기는 것인가?
만약 미국 등 해외 대부분의 국가들과 같이 ㈜두산이 자회사들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고 자회사는 상장되어 있지 않고 ㈜두산만 상장되어 있다면 이러한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들끼리 뗐다 붙였다 해봤자 모회사 주주들한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이것이 바람직한 구조다.
그러나 한국처럼 문어발식으로 자회사들이 상장되어 있으면, 이러한 구조개편 과정에서 자회사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각 자회사들의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판단한다면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재벌 시스템 하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은 현실이다. 지배주주의 최대 이익을 위해 자회사 이사회가 운영되기 때문에 특정 자회사 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항상 발생한다.
일률적으로 시가 등의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하게끔 해 놓은 자본시장법도 문제지만, 합병가액을 자유롭게 결정하게 해줘도, 모든 계열사들의 이사회가 지배주주만을 위해 일하고 자회사가 동시상장된 구조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다.
결국 정답은 이러한 이해상충 구조에서 이사가 전체 주주를 위해 공평하게 일하게끔 해야 하는 상법 원칙의 정립에 있다.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의 이사들은 이번 구조개편이 과연 각 회사의 주주들에게 이익인지, 즉 각 회사가 제 값을 받고 팔려가는지(M&A 되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답을 알고 있다. 구조개편이 강행된다면 이들 이사들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회사의 주주들도 이번 구조개편안을 의결하는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잘 행사해야 한다. 특히 불리한 입장에 처하는 밥캣과 에너빌리티 주주들의 의결권 행사가 중요하며, 각 회사의 주요 주주로 있는 국민연금의 판단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 김형균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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