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두산그룹이 이러는 것은 대통령 때문이다

매출 대비 시총이 100배까지 치솟은 두산로보틱스
공매도 금지 후 주가 폭등했지만 가격발견 기능 중단
지옥으로 가는 길은 '공매도 금지'란 선의로 포장됐다

주주시론 승인 2024.07.18 13:56 | 최종 수정 2024.07.21 22:17 의견 0

지난주 발표된 두산의 자본거래 공시를 살펴보면서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얼른 와닿지 않았다. ㈜두산을 비롯해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로보틱스, 두산밥캣 이 4개의 상장사를 도대체 왜 떼었다 붙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장사간 합병 비율은 현행 주가, 즉 시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자본거래 그 자체로는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고 누군가에게 손해가 난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두산로보틱스의 주가 그래프를 보고 있으니 의심이 들었다. 두산로보틱스 주가는 지난해 10월 공모 당시에는 2만6000원이었지만 지금은 그 3배가 넘는다. 시총이 작년 매출의 100배다. 적자회사라 주가수익비율(PER) 산출은 불가능하다.

이 초대형 테마주의 주가가 폭등하다보니 두산 경영진이 속이 쓰렸던 것 아닐까. 훨씬 공모가를 높여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 했으니 말이다. 주가에 낀 거품이 가시기 전에 뭔가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리하여 이 복잡하고 기괴한 자본거래를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어떤 기업의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폭등하면, 그 기업 오너는 어떤 생각을 할까. 정상적인 오너라면, 펀더멘탈과 무관한 기업 주가에 신경을 쓰지 않고 회사 경영에 집중할 것이다. 반면 회사 경영보다 자기 주머니가 중요한 K-오너라면 회사 주식을 몰래 내다 팔기도 한다. 지난해 '하한가 사태'가 터지기 직전 지분을 매각한 키움증권 김익래 전 회장이 좋은 예다.

그런데 오너가 지분을 당장 시장에 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보호예수로 묶여 있는 경우다. ㈜두산은 두산로보틱스 지분 68.19%를 보유하고 있는데 상장 후 1년과 2년이 되는 올해 10월과 내년 10월에 각각 절반인 34.09%를 팔 수 있다. 보호예수가 아니더라도 시총이 5조가 넘는 저 어마어마한 테마주를 덥석 블록딜 할 매수자를 찾는 것은 극히 어렵지 싶다.

이런 상황에서 꺼내 든 것이 4개 상장사간 자본거래다. 두산 측 발표에 따르면 자본거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두산의 두산로보틱스에 대한 지분율은 68%에서 42%로 줄어든다. ㈜두산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동시에 알짜회사인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 지분율은 13.8%(30%*46%)에서 42%(42%*100%)로 크게 증가한다. 반면 순자산 6조원의 우량주인 두산밥캣의 주주였던 투자자는 졸지에 순자산이 달랑 4000억원인 테마주 두산로보틱스의 주주가 된다.

물론 말이 테마주지, 좀 더 고급스럽게 말하면 성장주다. 가치주나 우량주보다 성장주나 테마주가 장기적으로 더 오를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따라서 우량주를 뺏어가고 성장주를 주는 거래가 사기나 불법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KTV 캡처]

하지만 한국시장에선 다른 얘기다. 적어도 2024년에는. 왜냐하면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현재 공매도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공매도가 금지된다는 것은 가격 발견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두산로보틱스 주주들은 지금 주가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훨씬 더 많은 투자자들은 작년 매출 대비 시가총액(PSR)이 100배에 이르는 현재 주가는 매우 부풀려졌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공매도가 금지돼 있으니 아무도 두산로보틱스에 숏(매도)을 칠 수가 없다. 쳐다볼 이유도 없다. 오로지 낙관론자들만 이 주식의 거래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는 사이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회사 경영진도 믿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솟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두산이 이 해괴한 자본거래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거품이 꼈다고 판단한 두산로보틱스 지분을 내주고 밥캣을 가까이 두는 거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공매도를 금지할 때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지는 당연히 못 했을 것이다. 오로지 '공매도 금지'를 외치는 개인투자자의 어려움을 헤아려주는 차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시장 대부분 전문가들은 공매도 금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가중시킬 것이라고 누누히 경고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지배주주가 소수주주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지옥의 입구에는 '공매도 금지'라는 선의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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