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주 간 기울어진 운동장, '포괄적주식교환'으로 심화

올해 자진상폐 기업 2배↑
포괄적주식교환 시 33% 주주의견 묵살
공개매수보다 비용도 훨씬 적어

김나경 승인 2024.07.18 08:45 의견 0

올해만 유가증권시장에서 4곳의 상장사가 자발적으로 상장폐지에 나섰다. 두산밥캣과 신성통상, 쌍용C&E, 락앤락 등이 바로 그곳이다. 코스피 상장사까지 합하면 자진상폐를 진행한 기업은 8곳에 이른다. 지난 9년간 자진상폐 기업이 연간 0~4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배로 늘어난 수치다.

이 과정에서 ‘마스터 키’로 사용된 방법은 바로 포괄적 주식교환이다.

올해 상반기 자진상폐에 나섰던 쌍용C&E와 락앤락, 신성통상이 공개매수를 하는 시늉이라도 한 후 포괄적 주식교환에 들어갔다면, 하반기에 자진상폐를 추진 중인 두산밥캣은 냅다 포괄적 주식교환을 하겠다고 통보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은 자진상폐 신청 시 최대주주의 최소지분율을 95%로 정하고 있다. 지분율이 95%에 이르는 절대적 대주주의 편의를 위해 지분 5% 이하 주주에 대한 의견 묵살을 예외적으로 허용해 주겠다는 뜻이다.

해외 역시 절대적 대주주를 위해 소수주주의 의견을 예외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를 허용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회사의 본질적 가치가 다수주주의 회사법적 이익에 귀속되며 소수주주의 재산법적 이익은 법적 지위의 손실이 비교형량 되고 경제적으로 보상되어 “그 재산권이 충분히 보장되는 한" 양보되어야 한다며 헌법에 합치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여기서 해외와 우리나라의 차이점은 소수주주의 주식에 대한 재산권을 충분히 보장하느냐다.

우리나라는 대주주가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공개매수를 강제하지 않는다.

공개매수는 주주가 공개매수 가격을 따져보고 성에 차지 않으면 주식을 팔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자진상폐에 반대하는 주주가 5%를 넘으면 상장사는 자진상폐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결의 사항인 포괄적 주식교환을 활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모회사가 자회사를 지분율 100%의 완전자회사로 만들기 위해 자회사 주주에게 모회사 주식을 주고 자회사 주식을 가져오도록 한 것이다. 특별결의 사항으로 찬성 지분 67%만 확보하면 실행 가능하다.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지분 100%를 확보한 후 자진상폐를 결정하면 기존 5% 수준의 극소수 상장폐지 반대 주주에게만 적용됐던 예외사항은 6배가 넘는 33% 주주에게 강제된다.

비용도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이 공개매수뿐이라면 주주들이 공개매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공개매수 가격을 높게 책정해야 되지만, 포괄적 주식교환은 '최근 주가'에 맞춰 모회사 주식을 지급하면 끝난다.

'최근 주가'는 기업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기준이다. 주가가 저평가됐을 때 포괄적주식교환을 진행한다면 공개매수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지분 확보가 가능하다.

심지어 2016년 상법 개정으로 포괄적 주식교환 대가로 주식 대신 현금 교부가 가능해지며, 소수주주를 완전히 내쫓고 싶으면 모회사 주식 대신 현금을 주고 주식 강매도 가능하다.

지배주주로서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반면, 미국은 ‘완전한 공정성의 기준’을 내세우며 소수주주의 재산권을 보장한다.

미국 델라웨어 법원은 지배주주가 소수주주를 축출하려는 경우, 만약 지배주주가 거래 양측에서 이해관계를 가진다면 이는 자기거래에 해당한다고 본다. 따라서 지배주주는 거래에 대한 엄격하고 완전한 공정성을 입증해야 법원에 의한 사법적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포괄적 주식교환이 일어나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지배주주가 같을 때, 자회사 주가가 저평가되는 등 지배주주가 유리한 시점에 포괄적 주식교환을 실시하고 '최근 주가'를 근거로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정하는 등의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기업조직개편의 촉진에 역점을 두고 2011년과 2016년 상법개정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진상장폐지뿐만 아니라 상장사 간 합병,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 인적·물적 분할 등에서 소수주주의 재산권은 모두 '최근 주가'라는 일차원적인 기준에 그쳤다.

지배구조 개편이 발생할 때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재산권 보장이 대주주의 선심에 달려있는 한국 증권시장에서 디스카운트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허술한 상법 위에서 미국과 일본 증시 호황을 부러워하며 외치는 ‘밸류업’은 허망하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이사의 충실 의무에 추가하는 등 상법 개정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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