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경영진이 사과할 대상은 누구일까. 1번 국민, 2번 소비자, 3번 감독원, 4번 주주. 물론 모두 다일 것이다.
우선 국가 전반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훼손시켰으니 국민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
은행 고객이 맡긴 돈을 잘 간수하지 못 했으니 이 역시 사과할 일이다. 감독원 지도를 솔선수범 따르지 않았으니 이것도 사과할 일이라 치자.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주주다. 따라서 언론을 통해서든, 주주총회를 통해서든 주주를 향해 가장 깊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게 도리다.
3년 연속 우리은행에서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2022년에는 한 직원이 10년에 걸쳐 무려 614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됐다. 지난해에는 지점 직원이 7만달러를 꿀꺽했고 지난달에도 1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각됐다. 이게 다가 아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취임한 지난해 3월 이후 현재까지 우리금융 4개 계열사에서 총 9건 142억원의 횡령·사기 사건이 발발했다.
기간을 과거 10년으로 넓히면 우리은행 사고액이 773억원이다. 이쯤되면 고질병이란 표현이 나올 법도 하다. 이중 환수율은 고작 1.7%에 불과하다고 한다.
전형적인 관리 책임 소흘에서 비롯됐지만 정작 그 직접적 피해자인 주주에게 우리금융 경영진이 사과하는 모습은 보지 못 했다. 버젓이 우리금융지주가 상장사임에도 불구하고 주주는 뒷전이라는 인상이다.
사고 발생 직후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국민께 사과"했고 지난 3일에는 임 회장이 내부 이메일을 통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4자성어까지 써가며 임직원에게 윤리의식을 강조했다.
하지만 두 경영진 모두 주주를 거론하지 않았다. 자신 임기의 목줄을 잡고 있는 금감원은 무섭고 여론의 질타도 신경이 쓰이지만 회사의 주인인 주주에게는 특별히 용건이 없는 듯싶다. 자신의 연임과 직접적 관계가 없어서 아닐까.
지난달 19일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장들을 집합시켰다. 은행권에서 횡령사고가 잇따른데 따른 이른바 정신교육 차원이다.
금융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은행장은 금감원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금감원은 '모범' 규제안을 들고 와서 이것으로 은행에게 각각 '자율' 규제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은행 임직원은 ctrl+V 한 '자율' 규제안을 들고 국민을 향해 준법서약식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횡령사고가 또 발생한다.
글로벌 은행의 한국 지점 대표를 역임했던 한 인사는 "해외라고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금융감독당국이 은행을 조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다만, 해외는 금융시장에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이 감독당국의 가장 큰 존재 이유인데 우리나라는 규제하고 간섭하는게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글로벌 은행들이 오래 전 한국에 진출했다가 짐을 싼 것도 이런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은행장 선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결국 자기들끼리 해먹는 복마전"이라고 지적했다.
문제의 시작은 결국 은행 경영진이 주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주주에게 손해를 입혔으면 자신의 임기로 책임을 져야 한다. 주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밸류업이다.
이복현 원장이 최근 우리 자본시장의 밸류업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툭하면 은행장들을 혼쭐 내는 방식으로는 은행주의 PBR이 정상화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우리금융그룹 경영진이 다음 주주총회가 오기 전에 주주들에게 사과의 마음부터 전했으면 한다. 4대 금융지주 중에서도 유독 낮은 PBR을 견디고 있는 주주들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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