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정확히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382조의3 개정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지도록 한 내용에 주주, 즉 ‘주주의 비례적 이익’ 또는 ‘총주주’를 추가하자는 논의다.
그러면서 한편에서는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의무를 부담하게 되면 주주들이 이사를 업무상 배임죄로 고소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충실의무나 배임죄 요건에 대해 정확히 따져보지 않아 생기는 오해인 것 같다.
우선 회사의 이사들이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지는 구조를 간단히 살펴보자.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비위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에 인정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사무’다. 누군가의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 맡긴 사람의 지시를 고의로 어겨서 손해를 발생시키는 경우 형사처벌한다는 조항이다. 그러면 회사의 이사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누구일까?
상법 제382조 제2항과 민법 제680조를 같이 봐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상법이 직접 쓰지 않고 민법을 링크하고 있는 방식은 언제 보아도 불만이지만, 어쨌든 두 법전을 넘겨서 종합하면 이사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회사’다.
정리하면, 회사는 이사에게 일을 맡겼고, 이사는 회사라는 ‘타인’의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가 고의로 회사의 이익에 반대되는 일을 해서 회사에게 손해를 끼치면 배임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될 경우 주주가 이사에게 일을 맡긴 사람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충실의무를 정확히 알면 쉽게 이해된다.
충실의무의 기원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일을 맡긴 사람과 일을 맡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수탁자 의무(fiduciary duty)로 정리되어 있다. 일을 맡은 사람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 하는 의무 (duty of care, 선관주의의무)와 맡은 일을 하면서 자신 또는 일부 주주만의 이익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 (duty of loyalty, 충실의무)가 있다. 쉽게 말해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것이 충실의무이고, 꼭 회사를 생각하지 않아도 개인간에 일을 맡기고 맡는 관계를 생각하면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데 반드시 직접 일을 맡기고 맡는 관계 (위임)가 있어야 충실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주는 회사라는 법인의 대표자로 이사를 뽑는다. 이사에게 직접 일을 맡긴 사람은 주주가 아닌 회사이지만, 이사는 뽑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으로 구성할 수 있다. 사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주주 한 명 한 명을 위해 일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평소에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면 주주 전체의 이익이 된다. 회사의 결정이나 실적에 따라 어떤 주주의 주가는 오르고 어떤 주주의 주가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과 주주는 그 자체로 평등하다.
그런데 주주들 사이의 이익이 엇갈릴 때가 있다. 합병이나 분할 같이 회사가 아닌 주주들 사이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경우다. 그럴 때는 어떤 주주는 상대적으로 이익을 받고 어떤 주주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합병하는 두 회사 모두의 주주인데 어떤 한 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높다면, 그 쪽으로 합병 비율이 유리하게 결정될 경우 그 주주의 이익이 된다.
바로 이럴 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적용된다.
합병을 결정하는 이사가 주주들 사이에서 공평한 거래가 되도록 해야 할 의무다.
주주가 이사에게 직접 어떤 일을 맡긴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결정을 할 때 모든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고 주주들 사이의 이익 충돌을 해결할 의무가 이사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와 있는 법안 중 ‘주주의 비례적 이익’에 대한 충실의무가 조금 더 정확히 쓴 버전이다. 조금 더 쉽게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되겠다. 이익을 보호할 의무이지만, 일을 맡았기 때문에 (위임) 생기는 의무는 아니니, 배임죄가 성립할 여지는 없다.
정리하면 이렇다.
- 위임 없으면 배임죄도 없다.
- 주주충실의무는 위임 없이도 규정할 수 있다.
- 고로 주주충실의무를 부과해도 배임죄와는 무관하다.
그래도 헷갈리면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라고 입법하면 된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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