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처럼 번지는 자진상폐...주가 하락 견디던 주주들 '허탈'

공개매수가, BPS보다 높아
상폐 후 폭탄 배당 가능성도

김나경 승인 2024.06.04 09:16 의견 0

최근 자진 상장폐지에 나서는 기업이 늘었지만, 공개매수가와 관련된 규정이 없어 기업과 소액주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락앤락은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오는 5일까지 2차 공개매수를 한다. 코스닥 상장사 커넥트웨이브 오는 17일까지 2차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다.

두 상장사는 1차 공개매수에서 원하는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 통상 상장폐지를 위해 필요한 최대주주 지분율은 코스피 95%, 코스닥 90% 이상이다. 락앤락 주식 공개매수자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너티)와 커넥트웨이브 주식 공개매수자인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1차 공개매수에서 85.45%, 76.88%의 지분만 확보할 수 있었다.

1차 공개매수에 실패한 이유는 매수가를 둘러싼 소액주주와의 갈등 때문이다.

기업공개(IPO) 시 증권사와 기업이 협의해 기업가치를 평가·분석한 후 공모가를 산정하는 것과 달리, 자진 상장폐지 시 공개매수 가격은 기업이 임의로 정한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공개매수가를 정하고 있다.

이 경우 공개매수자가 비용을 낮추기 위해 주가를 하락시킬 유인도 있다.

커넥트웨이브 소액주주들은 MBK가 2021년 커넥트웨이브를 인수한 후 자진상폐를 노리고 19년간 꾸준히 해오던 배당을 중단해 주가하락을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다른 경우도 있다.

최근 공개매수를 통해 자진 상장폐지에 나선 기업 대부분은 기업청산가치(BPS, 주당순자산가치) 이상의 공개매수가를 제시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커넥트웨이브와 쌍용 C&E의 BPS는 1만4470원, 2718원이지만 두 회사는 이보다 높은 1만8000원, 7000원을 공개매수가로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자진 상폐된 루트로닉 역시 BPS 6295원보다 높은 3만6700원을 공개매수가로 제시했으며, 2022년 1월 상장폐지 된 부산도시가스는 BPS(8만787원)와 비슷한 수준인 8만5000원에 주식을 공개매수했다.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자진 상장폐지에 성공한 기업 대부분은 배당을 대폭 확대해 최대주주의 현금 창출구가 됐다.

부산도시가스는 상장폐지 전 100억원이던 배당총액을 상장폐지 후인 2022년 2474억원, 2023년 4800억원으로 늘렸다. 이 회사의 지분 100%는 SK E&S가 보유하고 있다.

루트로닉 역시 2023년 배당총액을 상장폐지 이전의 2배 수준인 82억원으로 늘렸다. 루트로닉은 한앤컴퍼니의 완전자회사다.

한국ESG기준원은 “공개매수 가격의 프리미엄은 투자자들에게 이익실현의 기회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매수가격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소수주주들이 대주주 측과 대립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사의 현재 주가가 장기 성장성을 반영한 적정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된 경우, 시장가격에 기초한 공개매수는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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