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의 주주제안을 통해 남양유업의 감사로 선임된 심혜섭 감사가 제기한 주총결의 취소의 소의 1심 결과가 5월 31일 나온다. 남양유업의 이사보수한도 결정 주총 안건에 이사인 대주주 홍원식 회장이 찬성표를 행사한 것이 위법하다는 취지로 제기된 소송이다.
즉, 본인의 보수가 포함된 이사의 보수한도를 결정하는 안건에 본인이 표를 행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허용되면 과반 의결권을 보유한 이사인 지배주주는 본인의 보수 한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 이러한 ‘특별이해관계인’들이 의결권을 행사해오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24년 1월에 발간한 ‘이사 보수한도에 대한 주주총회 결의 시 특별 이해관계자 의결권 제한’ 보고서에 따르면, 722건의 이사 보수한도 승인 주주총회 안건 안건을 분석한 결과, 오직 4건만이 이사인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 것으로 나타난다.
과거 여러 하급심 판결에서 이사인 주주는 이사 보수한도를 결정함에 있어 특별이해관계인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지만, 실무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이사인 주주들이 해당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남양유업의 사례처럼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보수한도 안건의 가결 여부가 달라지는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한국에서는 아직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지 않은 반면, 최근 미국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판결이 하나 나왔다.
테슬라의 주식9주를 보유한 개인 주주가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테슬라의 임원들을 상대로 테슬라의 법적 소재지인 델라웨어 법원에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는데, 그 결과가 2024년 1월 30일에 나왔다.
주주대표소송의 내용은 일론 머스크가 받기로 한 최대 558억 달러 규모의 주식보상안에 찬성한 이사들이 이사의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본 보상안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인데, 델라웨어 법원은 소를 제기한 주주의 손을 들어주면서 일론 머스크의 주식보상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일론 머스크의 주식보상안은 심지어 주주총회에서 일론 머스크를 제외한 소수주주들의 과반(majority of minority) 찬성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를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판결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일론 머스크는 최대주주로서의 지분율(22%) 및 회사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테슬라의 지배주주(controller) 지위인 것이 인정되기 때문에, 머스크와 회사 간의 주식보상 계약에는 전체적 공정성(entire fairness) 기준이 적용된다.
그러나 소수주주의 과반 승인이라는 절차를 거칠 경우 전체적 공정성의 입증책임이 문제를 제기하는 원고에게로 전환된다. 테슬라는 소수주주의 과반 승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본 계약이 공정하지 않다는 입증을 원고가 해야 할 것이나, 재판부는 그 입증책임이 여전히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피고들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본 계약을 승인한 이사들이 일론 머스크와 가족 여행을 같이 갈 정도로 오랜 친분이 있는 등 독립적인 지위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일론 머스크로부터 독립적인 지위에 있다고 주총 안건을 설명하는 위임장 서류에 거짓 기재를 하는 등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가 소수주주들에게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머스크의 주식보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사들이나 위원회 위원들이 주식수나 가격 등 계약조건에 대한 객관적 판단 및 교섭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일론 머스크의 편에서 협업을 하는 모양새였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피고들이 본 계약의 전체적 공정성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본 보상안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일론 머스크는 이러한 법원 판결에 반발하여, 회사의 법적 소재지를 델라웨어에서 텍사스로 옮기겠다고 선언했으며, 며칠 전 공시된 위임장 서류를 통해, 텍사스로의 소재지 이전 안건과 델라웨어 법원에서 취소당한 주식보상안을 다시 승인하는 안건(과거보다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을 상정했음을 밝혔다.
이 판결은 머스크의 항소 등 여러 절차를 더 거쳐야 하는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이지만, 한국의 현실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우선 이사인 본인의 보상안을 결정하는 주주총회에서 본인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나머지 소수주주들만의 표결로 안건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게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점이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회사에서 이사가 본인의 보수한도 결정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과 정반대다.
그리고 단순히 소수주주의 과반 표결로 되는 게 아니라, 사전에 주주들에게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이사의 독립성 포함)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 역시 공시 서식 상의 형식적인 정보 외에는 필요한 정보가 거의 제공되지 않는 우리나라와 많이 다른 점이다.
그리고 이사의 독립성을 판단함에 있어, 지배주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점이 필자에게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는 사외이사면 독립적인 이사로 본다. 사외이사가 지배주주와 대학동기이든 친구이든 형식적인 ‘독립적’ 선임 절차를 거쳐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독립적’ 이사로 간주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이사가 지배주주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적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충격적이면서도 부러웠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아마 우리나라 기업의 상당수 사외이사들이 독립적이지 않은 이사로 인정될 것이다.
남양유업의 홍원식 회장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의 사례는 한국과 미국의 자본시장의 발전 정도의 차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이번 5월에 나올 남양유업 이사보수한도 결정 취소 소송 결과가 한국 자본시장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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