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배임죄 폐지와 상법 개정, 22대 국회가 빅딜을 하자

배임죄 무분별한 적용…기업가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여야 모두 공감하지만 오로지 말말말
빅딜 통해 기업 환경과 자본시장을 동시에 선진국 수준으로

주주시론 승인 2024.04.17 16:23 | 최종 수정 2024.04.18 10:01 의견 0

'대한민국에서 기업을 이끈다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재계 뿐 아니라 법조계 사람들을 만나도 흔히 하는 말이다. 우리 기업인들이 유난히 악독해서는 아닐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배임죄 적용이 뼈아프다.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기업인들은 언제든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공포 아래 경영을 해야 한다. 어지간하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징역 3년은 쉽게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전 세계에서 배임죄가 있는 나라는 독일, 일본, 한국 뿐이다.

그마저도 독일과 일본은 그 적용 요건을 엄격히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2005년 ‘경영판단 원칙’을 도입해 그 후 배임죄 적용 사례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일본도 '자기 혹은 제3자의 이익을 꾀할 목적’이 분명해야 배임죄가 적용된다.

경영자가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그 책임을 져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꼭 형법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업가치를 훼손한 경영자는 경영에서 물러나는 것이면 족하다. 적어도 명백한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앞선 변호사는 "주주나, 노조, 소비자가 기업을 공격할 때 무턱대고 배임부터 거니 민사법원에서 다퉈야 할 사항이 모두 형사법원으로 간다"며 "형사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민사법원은 대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고소 고발만 하면 검찰이 알아서 경영자를 조사해주니 경영진을 공격해야 하는 입장에선 손쉬운 해결책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기업 경영자의 목줄을 검찰이 늘상 쥐고 있다. 검찰 힘은 과도해지고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의 몸값도 떨어질 줄 모른다.

반대로 해외기업은 한국 시장 진출을 두려워한다. 국내 유망한 스타트업을 인수하기 꺼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언제고 검찰 조사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임죄 폐지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로 재벌과 밀접한 경제단체들이 주장하다보니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 했다.

그러나 이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마당에 22대 국회가 앞장서서 배임죄 폐지와 상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여기서 말하는 상법 개정은 주주의 비례적 이익 도입이다.

우리 기업 지배구조에서는 경영권을 장악한 대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이사회가 대주주 손을 들어주는 일이 허다하다.

이러한 부당한 결정이 이뤄지는 것은 우리 상법상 이사회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특정 주주에게 이익이 되고 다른 주주에게 손해가 가는 결정을 해도 이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 LG화학이 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하고 중복상장한 것이 대표적 예다.

미국의 경우 이사가 '회사 또는 주주'에게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만약 주주가 이사회 결정으로 불평등한 피해를 입는다면 소송 및 보상이 가능하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 추가는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총산 공약이었다. 또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역시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4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획기적인 법안을 잘 봤다”며 “그 방향에 공감한다”고 했다. 양 진영이 최소한의 공감대는 이뤘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배임죄 폐지와 주주의 비례적 이익 추가는 한국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기업 환경과 자본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과제다.

필요하다면 '빅딜' 차원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또 다른 대형로펌에서 기업 소송을 담당해 온 한 변호사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주주의 비례적 이익 추가 의무를 도입하는 대신 배임죄를 폐지해 기업 문제를 다루는 것이 법률가 입장에선 보다 자연스럽다고 본다"고 말했다.

‘탄핵’, ‘특검’, ‘식물정부’, ‘총질’과 같이 섬뜩한 어휘만 난무하는 여의도 국회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누군가가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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