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총액 2兆 기업 89% ‘집중투표’ 배제…가능 민간기업은 5곳뿐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 201곳
그중 21만 ‘집중투표제’ 정관 배제 안 해
대부분 공공기관·공기업·소유분산기업
자본시장연구원 “정관배제 특별결의로 상당수 주주 찬성”

김나경 승인 2024.04.09 09:03 의견 0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 기업 가운데 집중투표가 가능한 민간 기업은 5곳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기업들은 정관으로 집중투표제 적용을 배제해 소액주주들의 집중투표제 요청을 사전에 방지했다.

다만, 특별결의로 정관에서 배제한 만큼 이미 상당수 주주들의 의사가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8일 <주주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23 사업연도 말 자산총액(별도 기준)이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 201곳(에프앤가이드 기준) 중 집중투표제를 정관상 배제하지 않은 기업은 21곳에 불과했다.

집중투표가 가능한 곳 가운데 특정 대주주가 존재하는 기업은 한화생명, 한화오션, SK스퀘어, 메리츠금융지주, 한국캐피탈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한국전력·포스코홀딩스·KT·기업은행·KB금융 등 공공기관과 공기업, 소유분산기업에 해당 됐다.

2023년 기준 '집중투표제' 적용 가능한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 기업.

집중투표제는 1999년 6월 상법 개정을 통해 도입됐지만, 임의규정인 탓에 회사에서 정관으로 집중투표를 배제하면 주주가 요청할 수 없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2(집중투표)에 따르면 회사가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도를 배제하지 않은 경우, 발행주식총수의 3% 이상(최근 사업연도 말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회사의 경우 1%)을 보유한 주주가 집중투표제를 신청할 수 있다.

일반적인 주주총회에서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주주는 개별 이사후보자 각각에 대하여 보유 주식 수(의결권)만큼 찬반 의사결정을 한다.

그러나 집중투표제는 각 주주가 1주당 선임대상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보유하게 하고, 그 의결권을 이사후보자 1인 또는 소수에게 집중하여 투표하여 최다수의 표를 얻은 자부터 순차적으로 이사로 선임하는 제도다.

모든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선임되는 것을 막고 의결권 집중을 통해 소수주주가 추천한 이사를 보다 용이하게 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투표방식이다.

대부분의 상장회사가 집중투표방식을 정관에서 배제하며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대한 논의가 계속됐으나 현재는 그마저도 흐지부지된 상태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상법 입법예고안과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상법개정안 등으로 활발히 논의되다가, 지난 2020년 문재인정부 시기 ‘공정경제 3법’을 제·개정하면서 ‘집중투표제의 단계적 의무화’가 제외된 이후 흐지부지된 상태다.

JB금융지주가 지난달 28일 전북 전주 본점에서 제11기 정기 주주총회를 진행했다. (사진=JB금융지주)

집중투표제가 실시되고 있는 기업에서는 소액주주들의 이사회 진입이 활발해진 모습이다.

올해 정기주총에서 기관과 행동주의펀드 등이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이사회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KT&G는 지난 3월 정기주총에서 중소기업은행이 주주제안으로 상정한 사외이사 손동환 선임의 건을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가결했다.

KT&G 이사회에 외부 추천 사외이사가 등장한 것은 2006년 이후 18년 만이다.

JB금융지주는 올해 제11기 정기주총에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이 추천한 이희승·김기석 사외이사 후보 선임을 통과시켰다. 이희승 사외이사는 얼라인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후보에 올렸으며, 김기석 사외이사는 얼라인이 주주제안으로 직접 후보 안건에 상정돼 집중투표 과정을 거쳤다.

김기석 사외이사 선임은 국내 금융지주 역사상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로 선임된 첫 사례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가 연대하여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좋은 제도다. 다만, (집중투표제를 정관상 배제하는 것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쳐야 해 상당수 주주가 찬성했다고 볼 수 있어 그 회사 주주들의 의사라고 볼 수 있다. 집중투표제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주주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