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헤지펀드 "일본식 증시 부양책, 한국서 효과 없을 것"

지난해 '韓, 그만하면 됐다' 보고서 낸 英 펀드매니저
금융위 발표 자발적 밸류업 프로그램의 한계 지적
"일본은 가족기업 비중 낮아...소수주주 학대 안 해"
"한국 재벌은 소수주주 이익 침해로 얻을 이익 커"

김선엽 승인 2024.02.28 14:48 | 최종 수정 2024.02.28 14:50 의견 0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오너가와 경영진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일본과 우리는 기업 지배구조가 확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차이를 무시한 채 일본의 정책을 따라해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란 해석도 곁들여졌다.

영국 헤지펀드 헤르메스사의 아시아(일본 제외)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조나단 파인스는 이날 한 방송에 출연, "(한국 관료가) 기업의 80%를 통제하는 사람들의 인센티브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파인스는 지난해 말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에 대해 분석한 ‘그만하면 됐다’(Enough is enough)라는 보고서로 국내 업계에서 주목받은 인물이다. 헤르메스에서 32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주식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조나단 파인스CNBC 방송 화면

지난 26일 금융위원회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주식시장 저평가) 해소를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정부는 상장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각 기업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스스로 자본비용, 자본 수익성, 지배구조 등을 파악해 기업 가치가 적정한 수준인지 자체 평가한다.

이를 수용할 경우 제공되는 인센티브로는 세제 지원, 코리아 밸류업 지수 포함,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등이 제시됐다.

정부가 지난 1월 24일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언급하자 저PBR주들은 급등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정부가 실제 내놓은 가이드라인이 강제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되돌림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나단 파인스는 기본적으로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최대주주가 소수주주를 부당하게 다룰 수 있도록 놔두고 있으며 낮은 주가는 그 반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조치들이 어떻게 대주주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설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파인스는 "현실적으로 말하면 지금 이런 일들을 할 것이라고 정말로 믿는가"라며 "입법자와 감독당국은 불행히도 많은 경우에 이러한 금융 이해관계에 완전히 종속돼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왜 일본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이러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하기 어려운지도 꼬집었다.

그는 "일본에서는 먼저 많은 기업이 가족에 의해 통제되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더 중요한 것은 일본에서는 아무도 현 상태에서 혜택을 받고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경우 최대주주가 존재하고 이들에 의해 그룹의 경영 전반이 좌지우지되지만 일본은 재벌이라는 특수계층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특정 집단이 없단 의미다.

그는 "일본은 이미 소수 주주를 보호하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주가는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되지 않았고 소수 주주를 부당하게 다루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본은 재무적 프로그램에 의해 기업 가치가 올라갈 수 있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오너가가 소액주주를 희생시켜 이익을 추구해왔고 이러한 행동이 앞으로도 반복됨으로써 추가적인 이익을 얻을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당근을 곁들였지만 오너가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한국은 기업 지배 구조와 주식 시장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시기에 있다"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파인스는 이달 중순 내놓은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 한국 자본시장의 법과 제도를 선진국 수준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의 (높은) 상속세율이 그대로 유지되더라도 다음 조치들을 시행하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이라며 △지배주주가 타회사 주식과 교환하는 강제 주식 스왑 종료 △주가 희석효과가 있는 주식 발행이나 교환 시 소액주주 승인 의무화 △기업 인수 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특수관계자 거래의 소액주주 별도 승인 요구 △매입 자사주의 소각 등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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