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대통령이 주주행동을 하는 나라

플랫폼 기업을 '독과점 기업'이라고 꾸짖은 윤 대통령
혁신은 말장난? 민간기업의 '목숨을 건' 도전들 무시
연금까지 동원...용산 파퓰리즘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

주주시론 승인 2023.11.02 15:44 | 최종 수정 2023.11.02 15:47 의견 0

"이 정부는 삼성전자를 포스코, KT처럼 국민기업으로 만들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 즉 지금의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을 만나면 왕왕 듣는 얘기였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민간기업을 공기업마냥 쥐락펴락하고 싶어한다는 주장이었다.

'설마'하는 심정으로 듣곤 했는데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문재인 정부가 아닌 윤석열 정부에서다.

지난 1일 민생 타운홀 미팅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카카오모빌리티를 두고 "아주 독과점 행위 중에서도 독과점의, 어떤 부정적인 행위 중에서도 아주 부도덕한 행태"라고 맹비난했다.

스스로 자유주의를 지향한다던 대통령이 플랫폼 기업 죽이기를 선언하는 장면은 초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카카오모빌리티의 등장 이후 소비자의 택시 이용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타다’를 죽였듯이 윤석열 정부는 ‘카카오택시’를 전 국민 스마트폰에서 삭제하고 싶은 것일까.

용산 대통령실 사람들 눈에 플랫폼 기업은 그저 ‘땅 짚고 헤엄치는 비즈니스'로 보이나 보다. 이들이 외쳤던 '혁신'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했던 것일까.

윤 대통령은 카카오가 독과점이라고 힐난했지만 모든 기업은 독과점을 꿈꾼다. 영원히 완전경쟁시장에서 영혼을 갈아 장사를 하고 싶어하는 사업가는 아무도 없다. 대부분 기술과 자본력에서 능력이 안 될 뿐이다.

그래서 여유가 되는 이는 능력이 되는 기업을 골라 지분을 사들인다. 그게 주식투자다.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기업은 주주에게 이익을 되돌려준다. 이게 주주자본주의다.

윤 대통령의 발언 직후 기다렸다는 듯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방침을 밝혔다.

카카오, 카카오페이, BNK금융지주, 키움증권, 현대로템, CJ대한통운 등의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했다.

여론전을 펼치고 지분보유 목적을 변경하는 것은 전형적인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다. 대통령이 주주행동을 하는 나라가 됐다.

물론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그 동안 의결권 행사를 포기해, 결과적으로 최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에 그쳤다는 비판이 자본시장에서 끊이지 않고 나왔다.

관건은 연금의 의결권 행사의 방향이다. 연금은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만큼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즉 투자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어떤 펀드매니저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위해 펀드를 운용하지 않는다. 오직 고객에게 돌아갈 수익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투자자와의 약속이 최우선이다.

연금 역시 마찬가지다. 공정과 정의는 연금이 지향할 목표가 아니다. 그건 정치권과 공무원의 몫이다.

예컨대 골목상권 보호와 같은 논쟁적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 택시기사의 생존권을 지켜내는 것은 연금의 관심사안이 되면 안 된다. 은행이 배당을 많이 하면 연금은 고마워 해야지 '약탈적 금융'이라고 꾸짖어선 안 된다.

정부가 카카오를 향해 걸고 넘어지는 분식회계 의혹 역시 무리수다.

3대 회계법인이 문제 없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금융감독원이 나서서 회계분식을 주장하고 있다.

금감원이 설령 문제를 삼을 순 있지만 지금과 같이 '분식'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다른 의도를 의심케 한다.

지난 6월 말 기준 카카오와 네이버의 소액주주는 각각 약 200만명, 100만명이다.

경쟁사 카카오가 탈탈 털리면 네이버 주주들은 행복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다음 차례는 네이버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주주를 위협하는 대통령의 주주행동주의가 다음 총선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하다.

"우리 디지털 기술혁신기업이 글로벌 스탠더드 선도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전폭 뒷받침하겠다"

윤 대통령이 올초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3'에 참가했던 기업인 40여명과 오찬을 하면서 한 말이다.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상기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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