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시기가 다가와 노랗게 익은 벼와, 수확시기가 지나 조금은 누렇게 마른 대파가 자라고 있는 넓은 부지에 다다랐다. 이곳이 일반적인 논·밭과 다른 점은 각기 다른 네 개의 태양광 패널 아래 작물이 자라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경북 경산 소재 영남대학교 영농형태양광 실증단지로, 한국동서발전이 2019년 기금을 조성해 만들었다. 구역별로 단면형 일반 모듈, 양면형 일반 모듈, 수직형 모듈, 협소형(영농형태양광 전용) 모듈 등 총 100kW(킬로와트) 규모의 영농형태양광 설비가 설치돼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이하 한화큐셀)이 지난 14일 영남대학교 경산캠퍼스에서 영농형태양광 미디어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영농형태양광 표준화 국책과제 주관사인 한국동서발전,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인 영남대학교 정재학 교수 연구팀 등이 참석했다.
◆ 농지보호·농촌자생·식량자립 '1타3피' 노린다
한화큐셀의 영농형태양광 모듈 아래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사진=주주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영농형태양광은 농경지에서 태양광 발전과 농업 생산을 병행하는 것을 말한다.
영농형태양광은 농지에서 발전만 진행하는 일반 농촌 태양광과 달리 직접 농작물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산림형 태양광은 산을 깎기 때문에 산림 훼손 우려가 있고, 염해의 간척 농지를 활용할 경우 농지가 감소하는 문제가 있지만 영농형태양광은 이런 문제가 없다.
농지에 태양광 발전을 위해 패널을 설치하면 그늘이 생기지만 차광률을 30% 미만으로 유지할 경우 생산에 문제가 없다. 하부에 빛이 충분히 들어가야 하므로 2~5m 수준으로 하부 시설물을 설치한다. 농기계가 드나들기에도 충분한 높이다.
정재학 영남대학교 화학공학과 교수는 "1.0~1.5m 높이의 태양광 모듈 아래 드리우는 그림자는 굉장히 진하지만, 그 이상 높이를 높일 경우 그림자가 진하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식물은 고유의 광포화점이 있다. 광포화점은 식물 광합성에 필요한 최대 일조량을 말한다. 식물은 광포화점을 초과한 빛에선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않으며, 광포화점 넘어가는 빛은 식물에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농형태양광 아래서 자란 농작물은 냉해·서리 등에 강하다. 실제 일반 농지 대비 영농형태양광 아래서 자란 작물들이 외래종 잡초의 피해를 덜 받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주주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또한 영농형태양광 아래서 자란 농작물은 냉해·서리 등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태양광 시설이 폭염에는 직사광선을, 폭우에는 강수를, 겨울에는 냉해를 막아 작물이 받는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올해는 폭염과 폭우가 반복돼 외래종 잡초가 많이 자란 상황이다. 이 잡초들이 번성하는 날씨엔 우리 작물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 영농형태양광 아래서 자란 작물들은 외래종 잡초가 덜 자라 우리 작물들이 영향을 덜 받았다"고 설명했다.
농촌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 인구가 비율이 증가하는 가운데 농촌 경제 활성화의 실질적인 방안으로 영농형태양광이 거론되고 있다.
한국동서발전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650평의 자기소유 농지에 영농형태양광을 설치하여 벼농사와 발전을 병행할 경우 같은 면적의 농지에서 벼농사만 지을 때의 수익인 160만원의 최대 6배에 달하는 986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정 교수는 "구체적으로 농민들에게 2.7%의 저리로 90%만 지원을 해주고 10%는 자기 자본을 넣는다는 가정 하에 계산을 하면, 20년간 빌린 돈을 원금과 이자를 다 갚고 평균 월 100만원 이상 수익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임도영 한국동서발전 미래기술융합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농산물과 원자재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영농형태양광은 미래 식량안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이다"고 설명했다.
◆ LED광원·빗물순환기술...생산량 극복 위한 연구 진행 中
생산성 증대를 위해 영농형태양광에 LED광원, 빗물순환기술 등의 스마트농업을 적용하고 있다.
[사진=주주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영농형태양광의 단점도 있다. 가장 큰 것은 농작물 수확량이 10~15% 정도 줄어드는 점이다.
연구진은 영농형태양광에 LED광원, 빗물순환기술 등의 스마트농업을 적용하는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실제 일부 공정의 경우 농업 생산량 증가를 확인했다.
조남우 한국동서발전 차장은 "2020년 보리 수확량의 경우 일반농지에서 100% 수확량을 기준으로 한다면 영농형태양광과 빗물순환기술을 적용한 결과 108.1%, 여기에 LED광원을 추가로 적용한 경우 117.5% 수확량을 확인했다. 2021년 대파수확량은 138%까지 증가했다"고 말했다.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공 기간과 비용을 감축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한화큐셀·영남대·모노솔라가 함께 개발하고 실증한 개선형 구조물은 기존 프레임형 구조물 대비 설치기간은 20일에서 7일로, 비용은 1.87억원에서 1.4억원으로 단축했다.
조 차장은 "기존에는 프레임 고정, 모듈 조립, 전기 공사 등을 구조물 세운 후에 구조물 위에서 작업했다. 이 방식의 경우 안전에 문제가 있을뿐더러 설치기간과 비용이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프레임·모듈 조립, 전기공사를 먼저 진행한 후 구조물을 세워 마무리하는 기술을 개발해 설치기간과 비용을 줄였다"고 말했다.
영농형태양광을 통해 수확한 작물들도 일반 작물 대비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사진=주주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영농형태양광을 통해 수확한 작물들도 일반 작물 대비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영농형태양광 방식으로 재배한 대파로 만든 파무침을 기자가 직접 시식해 본 결과,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파무침과 다르지 않았다.
◆ 크기 대폭 줄이고 친환경 내세운 한화큐셀의 '영농형태양광 모듈'
한화큐셀이 제공하는 협소형 모듈은 일반 태양광 모듈 대비 면적 52%, 가로폭 67% 수준으로 크기를 대폭 줄였다. [사진=주주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실증단지에 적용된 네 개의 패널 중 한화큐셀의 모듈이 적용된 것은 협소형 양면 모듈, 양면형 일반 모듈이다.
이중 한화큐셀이 제공하는 협소형 모듈은 일반 태양광 모듈 대비 면적 52%, 가로폭 67% 수준으로 크기를 대폭 줄였다.
홍성민 한화큐셀 시스템영업팀 팀장은 "협소형 모듈 사용 시 맑은 날은 그림자(음영)가 감소해 하부 작물 광합성량을 증가시키고, 비 오는 날은 하단부에 집중되는 우수 집중량(작물 피해발생)을 60% 수준으로 감소시켜 농작물이 입는 낙수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설명했다.
한화큐셀의 영농형 모듈은 '고내구성·친환경 KS인증'을 취득한 Pb-free(납 함유량 0%) 제품이기도 하다. 이 인증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가장 민감한 수상태양광 모듈의 엄격한 품질 기준을 말한다.
◆농지법 개선 등 해결과제 남아
한화큐셀의 영농형태양광 모듈 아래 벼가 자라고 있다. [사진=주주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영농형태양광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농지법이 개선돼야 한다.
현행 국내 농지법으로는 태양광 발전소를 최장 8년까지만 운영할 수 있다.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허가 기간을 법으로 8년까지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수명이 25년 이상인 발전소를 철거해야 하기 때문에, 영농형태양광의 경제성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영농형태양광 활성화를 위한 관련 법률 제·개정안은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공통적으로 영농형태양광 사용 기간을 20년으로 연장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0년 6월에 박정 의원이 영농형태양광을 위한 타용도 일시사용허가 기간을 20년으로 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데 이어, 김승남 의원이 2021년 11월 같은 내용의 ‘영농형태양광 발전사업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또한 2021년 3월 위성곤 의원은 영농형태양광 사업을 하는 농가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농업인 영농형태양광 발전사업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최근에는 윤준병 의원이 ‘농지의 복합 이용’ 개념을 도입하는 농지법 일부개정안을 지난 5월 대표발의했다.
유재열 한화큐셀 한국사업부장 전무는 "영농형태양광 사업을 위한 모델 제작은 한화큐셀만 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미래를 위한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올해 법안이 통과돼서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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